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브로치 외교’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유엔대사 시절에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그에게 “뱀 같은 여자”라고 악담을 하자 금색 뱀 모양의 브로치를 달고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했다. 후세인을 조롱하기 위한 응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났을 때에는 햇살 모양의 브로치를 달았다.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옹호한다는 의미였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재임 11년간 중요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사각형 모양의 핸드백을 가져왔다. 이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각료들을 몰아붙여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는 뜻을 가진 ‘핸드배깅(handbagging)’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어느 순간 패션은 메시지가 됐다. ‘옷이 총보다 강력한 무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정치인들은 그 힘을 메시지 전달에 이용하고 있다. 국내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옷의 종류와 색깔을 달리한다. 남자의 ‘패션 정치’는 주로 옷·넥타이, 여자는 옷·헤어스타일·브로치다. 지난 4·13선거 때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색깔인 빨간 재킷을 입고 투표소에 나타나 야당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국 대선후보 1차 TV토론에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빨간 정장을,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파란 넥타이를 매 눈길을 끌었다. 둘 다 상대방의 소속당을 상징하는 색깔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통념을 깬 이런 선택에 대해 ‘색깔심리이론’을 인용한 야후뉴스의 분석이 흥미롭다. 이에 따르면 스포츠경기에서 빨간색은 승자의 색으로 통한다. 빨간색 의상을 입은 선수는 공격성이 향상돼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것이다. 반면 파란색은 개방성과 평화·투명성을 떠올리고 안정감을 준다. 트럼프의 공격적 이미지를 순화시킬 수 있는 색깔이라는 설명이다. 패션에 메시지를 담으려는 정치인이 늘어나면서 정치판이 갈수록 패셔너블해지는 느낌이다. /이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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