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2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을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김 장관을 해임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전자결재로 김재수 장관 임명을 강행한 데 이어 이번에 국회의 해임건의까지 무시할 경우 야당과의 협치(協治) 시도는 사실상 실패로 결론 나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야당이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한 것은 부당한 정치공세로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김 장관을 사퇴시키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수용불가 사유로 ▲ 취임 한 달도 안 된 장관을 상대로 정치적 목적에서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점 ▲ 거대 야당의 힘의 정치를 방치할 경우 국정이 마비된다는 점 ▲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이 제기한 저금리 특혜대출 의혹 등 김 장관에 대한 각종 의혹이 해소됐다는 점 등을 꼽았다.
한 관계자는 “장관 직무 수행 중에 과실이 있거나 역량 부족이 입증되면 해임건의를 받아 물러나게 할 수 있겠지만, 이제 직무를 시작하려는 김 장관을 해임하라는 것은 정치공세이자 해임건의안의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거대 야당이 숫자의 우위를 내세워 횡포성 해임건의안을 처리했고, 이것을 정부가 수용하면 앞으로 어느 장관이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는가”라며 “국정 마비로 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부당한 해임건의는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김재수 장관 등 장ㆍ차관 80여명과 함께 워크숍을 개최해 집권 후반기 국정과제를 점검하는 등 예정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정치공세용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해임건의안은 말 그대로 해임건의일 뿐이고 장관을 퇴진시킬 아무런 사유가 없는 만큼 흔들림 없이 국정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개헌 이래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장관이 모두 물러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은 해임건의안 통과 후 ‘장관 퇴진’을 수용하지 않은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사드 반대와 우병우 수석 의혹 제기, 최순실 씨 등 비선의 국정농단 의혹, 안종범 수석의 대기업 팔비틀기 의혹 등을 본질적으로 하나의 문제로 보고 있다. ‘대통령과 국정을 흔들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단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라도 밀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나머지도 모두 무너진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2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진피해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논란을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해 비통한 마음이었는데 대통령인 저는 진심으로 국민들을 걱정하고 국민들을 위해 일하며 남은 임기를 마칠 것”이라고 말한 것은 ‘흔들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정치권의 예상대로 박 대통령이 김재수 해임건의안을 받지 않을 경우 그렇지 않아도 냉각된 정국은 완전히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다음 주부터인 국정감사에서 야당은 임기 말 청와대의 기를 꺾기 위해 미르재단 등을 쟁점 삼아 총공세를 펼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또한 이에 맞서면서 이같은 무한 대결은 박근혜 정부 임기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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