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제국주의 시절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한 남하정책을 벌이다 1860년 청나라 땅이었던 연해주(프리모르스키주)를 손에 넣었다. 그러고는 ‘동방(보스토크)을 지배하라(블라디)’라는 야심만만한 이름을 연해주의 한 해안도시에 붙였다.
그러나 45년 뒤 이름과는 정반대의 아픔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에 새겨진다.
1904년 러시아와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에서의 국가 이익을 놓고 담판하지만 결국 협상은 깨지고 전쟁이 발발한다. 러일전쟁이다. 전쟁 초기 일본은 뤼순항을 기반으로 삼은 러시아 극동함대를 바다와 육지 양면에서 공격해 격파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자 러시아는 유럽의 발틱함대를 이 지역에 급파했다. 당시 러시아는 영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국력을 가진 나라였고 군사대국이었다. 특히 해군력, 그중에서도 발틱함대는 세계 최강으로 꼽혔다.
그러나 유럽을 출발한 발틱함대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가야만 했다. 수에즈운하를 지배한 영국이 통과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희망봉을 돌아 동북아시아까지 들어온 발틱함대는 일본과의 전투에 앞서 보급부터 받아야 했다. 그 보급기지가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였다.
발틱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에 가기 위해 대한해협을 통과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를 감지하고 추격에 나서 1905년 5월27일 동해에서 발틱함대를 궤멸시킨다. 오랜 항해로 지친 러시아 해군은 결국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지 못하고 일본의 공격에 무너지고 만다. 결론적으로 러시아 해군에게 유럽에서 극동은 너무나 멀었다.
시간은 흘러 21세기가 됐지만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는 여전히 멀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는 무려 9,288㎞나 된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의 연해주, 보다 크게 극동 지역은 아직까지 러시아에서 가장 낙후된 곳이다. 대부분의 땅이 미개발지다.
이런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신동방정책’을 주창하면서 극동 개발이 러시아의 중요한 국가전략 중 하나로 떠올랐다. 러시아는 극동 개발로 한중일과의 교역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침체된 국가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복안을 세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달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2차 동방경제포럼(EEF)에서도 극동 경제 부흥을 위한 의지를 분명히 나타냈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극동 개발이 성공하려면 한국의 참여가 필수라는 점이다. 한국에도 극동은 에너지·천연자원·인프라·해운·물류·농업·수산·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기회의 땅이다. 푸틴이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밀어붙이는 러시아의 국가전략 정책을 활용해 한국 경제의 활력을 더할 수 있는 찬스다.
러시아와의 경협 확대는 국제정치 면에서도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 경제를 바탕으로 러시아와 친구가 된다면 한국은 ‘미일 대 중·러’라는 대립 구도에서 보다 자유롭게 숨 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훗날 한국과 러시아의 극동 경제 파트너십에 북한을 끌어들인다면 한반도 긴장 완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1860년 내보인 ‘동방을 지배하라’는 꿈은 푸틴 치세에 들어 ‘동방의 경제를 지배하라’는 꿈으로 바뀌었다. 한국이 이러한 세계적 흐름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관련한 국가전략을 하루속히 세워야 한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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