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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넉 달 내 11조원 써야 하는 추경 졸속집행 없어야

구조조정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여야는 2일 본회의를 열어 약 11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추경안이 제출된 지 39일 만이다. 서별관 청문회 증인을 둘러싼 여야 대립과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 논란 등으로 한때 무산 우려까지 제기됐지만 겨우 봉합돼 실행을 앞두게 됐다. 정부도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예산 집행을 심의 의결했다. 너무 늦게 결정돼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그나마라도 경제에 도움이 되려면 최대한 빨리 집행에 나서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관련 업종 근로자들과 협력업체 상당수가 실업과 일감 중단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예상을 훨씬 웃도는 해운업 구조조정의 충격으로 수출과 물류마저 비상이다. 상황이 더 악화해 손쓸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추경 집행은 속도전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달 중 추경 예산의 64%인 5조5,000억원 이상을 집행하고 이 중 구조조정 지원 예산은 90% 이상, 일자리 창출 및 민생안정 분야는 75% 이상 집행한다는 목표를 세운 이유다. 최대한 추석 전후에 돈이 풀리도록 해 지원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추경 집행을 너무 서두르다 보면 졸속 집행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사실 이번 추경은 어느 때보다 부실하게 검토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사용처도 밝히지 않고 금액부터 확정해 ‘깜깜이 추경’이라는 비판을 들었고 철저한 심사로 부실사업을 걸러내야 할 국회는 정국 주도권 장악을 위한 기싸움만 하며 허송세월했다. 검토와 심사가 제대로 이뤄졌을 리 없다. 게다가 집행까지 남은 시간은 채 넉 달이 안 된다. 시간이 없어 쓰지 못하는 예산이 적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불용예산을 최대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실무자들로서는 사업 타당성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자금부터 풀어야 하는 상황에 몰린 셈이다.



추경이 시간에 쫓겨 방만하게 집행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실업 지원은 누구나 타가는 눈먼 돈으로 전락하고 기업에 주는 자금은 부실업체의 수명만 늘려놓을 수 있다. 일자리 창출과 민생안정을 통한 구조조정 대응, 경기 활성화라는 목적 달성은커녕 자칫 예산 누수라는 엇나간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절박한 경제를 살리고자 가시밭길을 뚫고 마련한 추경이다. 그만큼 정부는 국민 혈세가 헛된 곳으로 새지 않도록 세심하게 점검해야 한다. 예산 불용을 막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민 혈세로 이뤄진 추경이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이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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