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 파행 이틀째인 2일 극적으로 국회 정상화에 합의, 추가경정예산안과 대법관 임명 동의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정 의장은 새누리당의 사과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대신 ‘추경 통과를 위한 사회권 인계’를 받아들여 극한 대치를 풀었다.
하지만 이날 합의는 양측이 시급한 민생현안 처리를 위해 한 발씩 물러선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여야는 20대 정기국회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와 노동개혁,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현안들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이날 하루 종일 긴박하게 돌아갔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오전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추경 처리가 무산된 것에 대해 국민들께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정 원내대표가 “사과 문구에서 ‘국민들께’라는 표현을 빼달라”고 요구했으나 정 의장은 이를 거부했다. 정 의장은 ‘본회의 사회권을 부의장에게 양도해 추경과 대법관 임명동의안을 처리하자’는 제안은 물론 사과 요구 역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사회권 인계를 통한 추경안 조속 처리 △명확한 사과 △재발 방지를 위한 법 개정 등을 ‘보이콧 해제’의 전제 조건으로 확정한 뒤 의장실을 방문해 집단 농성을 벌였다.
이정현 대표는 “민생을 볼모로 국회를 인질로 잡은 정치 테러다. 최소한의 질서를 정세균이라는 이 양반이 깨뜨린 것”이라며 “국민이 함께 이룬 대한민국 의회 민주주의를 ‘준비된 테러’로 깡그리 무너뜨린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극한대치의 장기화가 예상되던 흐름은 오후5시15분께 국회 정상화에 대한 극적 합의 소식이 전해지며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정 의장이 박주선 국회 부의장(국민의당)에게 본회의 사회권을 넘기기로 하면서 사태가 봉합된 것이다.
정 의장은 이날 합의 후 기자회견에서 “개회사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하는 저의 진심이었고 어떤 사심도 없었다”면서도 “추경안 등이 제때 처리되지 못하고 있어 의장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꼈다. 국민께 걱정을 끼쳐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의장과 집권여당의 다툼은 예상보다 조기에 마무리됐지만 앞으로 이어지는 정기국회에서 여야는 여러 현안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충돌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야당은 오는 26일부터 10월15일까지 진행되는 국정감사 기간 국회 운영위원회에 우병우 수석의 출석을 요구할 방침이다. ‘우병우 청문회’를 통해 재산 형성과정과 직권남용 의혹에 대한 추가 폭로를 이어가면서 정권 말기의 레임덕(권력 누수)을 앞당기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사드 배치 문제 역시 여전히 여야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쟁점이다. 여당과 국회의장의 이번 충돌로 20대 국회가 협치 모드에서 대치 국면으로 전환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국민의당과 공조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이와 관련해 아직까지 신중론을 펴고 있지만 전당대회 이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드 배치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힌 만큼 당론 채택을 통해 대여 공세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인사청문회 야당 단독채택, 야당 소속 상임위원장의 추경 예산안 단독 처리, 새누리당 보이콧 등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앞으로 정기국회에서 펼쳐질 여야 간 전쟁을 미리 확인한 ‘전초전’에 불과한 셈이다. 실제로 이날 본회의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잃어버렸던 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진작에 우리는 이 힘을 되찾아야 했다”며 강한 투쟁을 예고했다.
노동개혁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같은 경제활성화법 역시 뜨거운 뇌관이다. 정부·여당은 19대 국회에서 폐기된 이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지만 야당이 반대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어 정기국회 내내 진통이 예상된다.
연말 예산정국에서도 여야 간 전면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권이 증액·감액 등의 예산 심사를 주도하면서 이번 추경안 처리 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야당의 단독 처리 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정부는 이날 밤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서울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추경안을 심의·의결했다. /나윤석·류호·박효정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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