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후폭풍이 글로벌 물류대란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시아로 향하는 대체 배편을 찾느라 한진해운발(發) 운임 인상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며 한진해운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글로벌 해운사들과 주요 선사들의 피해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8월3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진해운과 계약했던 미국 수출입 업체들이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로 향하는 화물을 실어나를 다른 해운업체를 찾느라 혈안이 되면서 운임이 치솟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진해운의 선박이 주요 항구에서 입항을 거부당하거나 억류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선박 3척은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롱비치의 항구에 기항할 예정이었으나 선박이 채권자에 의해 압류될 가능성을 우려한 항구 측에서 입항을 거부했다. 중국 상하이와 샤먼, 스페인 발렌시아 등을 포함한 항구들은 한진해운이 사용료를 내지 못할 것을 우려해 선박 입항을 막았다. 1만4,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의 대형 컨테이너선인 한진수호호는 상하이항 입항이 저지됐으며 비교적 작은 규모의 컨테이너선인 한진로마호는 싱가포르에서 채권자의 요청으로 지난달 30일 억류됐다.
이에 따라 한진해운과 계약했던 미국 회사들은 이날 새로운 해운사의 선박을 예약하고 선적한 물건을 옮기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한진해운과 계약했던 운임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다급하게 계약을 체결하는 일도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피터 슈나이더 TGS트랜스포테이션 부사장은 “운임이 터무니없이 올라갈 것”이라며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한국·중국·일본 등지로 향하는 물동량이 일일 컨테이너 2만5,000개 분량에 달할 정도로 ‘대목’인 상황이라 갑작스러운 법정관리의 충격은 더욱 컸다. 업계 자료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아시아~미주 항로의 점유율은 6.8%에 달한다. 수주 전부터 한진해운을 피해 다른 업체들과 계약을 맺었던 대형 업체들과 달리 미처 이런 대비를 하지 못하고 ‘한 바구니에 달걀을 몽땅 담은’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컸다고 슈나이더 부사장은 설명했다.
글로벌 4대 해운동맹이자 한진해운이 속해 있던 CKYHE얼라이언스는 전날 한진해운을 퇴출하기로 결정하며 냉정한 선 긋기에 나섰다. 한진해운은 글로벌 시장에서 컨테이너선 영업을 할 일종의 라이선스를 잃게 된 셈이어서 회생 가능성은 더욱 멀어지게 됐다. CKYHE 회원사인 코스코(중국)·에버그린(대만)·양밍(대만)·K라인(일본) 등은 한진해운 기항지에서 선박 억류와 입항 거부 등 자산 가압류 사태가 발생하자 한진해운을 빼고 운항하기로 했다. 같은 동맹 소속 해운사에 맡겼던 화물까지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사태를 우려하는 화주들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한진해운 사태 탓에 이들도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운업계 분석업체인 시인텔매리타임애널라이시스의 앨런 머피 최고경영자(CEO)는 해운전문지인 로드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컨테이너 운송업체들의 제휴관계가 날로 밀접해진 가운데 충격은 한진과 이들의 고객을 넘어 CKYHE얼라이언스의 회원사에까지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며 “한진 고객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번 혼란에 강하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법정관리 후폭풍은 한진해운에 선박을 빌려줬던 해외 주요 선사들의 경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캐나다 언론인 밴쿠버선은 이날 한진해운에 가장 많은 7척의 배를 빌려준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선주사인 시스팬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보도했다. 시스팬이 한진해운과 맺고 있는 장기용선 계약 규모는 총 3억6,300만달러에 달하며 한진해운은 이 중 1,860만달러(6월30일 기준)를 연체했다.
데이비드 스피백 시스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밴쿠버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위험 노출은 그리 크지 않다”면서도 “법정관리인이 한진에 대한 계획을 내놓아야만 하며 그들이 선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사태를 끝낼 수 있는지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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