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들어 한중관계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만 같다. 한중관계는 박근혜 정부 대외정책의 최대 성과라 할 정도로 역대 최상의 관계를 형성했다. 그런데 2016년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중관계는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그 결과로 한중관계는 역대 최악으로 급전직하할 개연성이 큰 상황이다.
원인을 제공한 북한은 아마 현 상황이 그리 불만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한미는 결속했지만 미중관계는 더 악화됐고 한중관계는 근본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다행히도 북한이나 중국 모두 현 상황을 적극 활용해 대한(對韓) 북중협력 체제를 구축할 의지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다. 북한 역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의식해 스스로 핵무장을 완성해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대신 한중 갈등은 최대한 부추기려 할 것이다.
한중 양국 내 여론은 서로 적대감이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의 대국이기주의를 비난하고 있고, 중국은 한국이 중국의 전략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반(反)중국전선(戰線)에 가담했다고 분개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 간의 관계는 ‘나는 옳고 상대는 정의롭지 않다’고 주장하면 전쟁 이외에는 대안이 없어진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는 전제에서 관계는 시작돼야 한다. 양 국민 간의 국가주의와 애국주의 정서가 극대화될수록 양국의 손실은 증대된다. 대신 양국 간의 대결을 고취시키는 주창자들의 이익과 위상은 높아져 간다. 한중 내부에 묘한 ‘적대적 공생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한국·일본 내 극우주의, 북한·미국 간 전략적 이해 사이에도 이러한 적대적 공생관계가 형성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결과로 한국의 미래만 이래저래 암울하다.
한국은 강대국이 아닌 중견국가이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대륙과 해양세력의 갈등을 모두 담지하고 있는 반도국가이다. 이런 국가는 주변 강대국들의 분쟁에 얽매이기 쉽고 항상 안보 불안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 거의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맞먹는 대외무역의존도를 지니고 있다. 분쟁에 무척이나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다. 한중 간 최근의 사드 갈등에서 아마 가장 불안해하는 집단은 경제계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어떠한 분석이나 체계적인 정책대안이 경제계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도 대단히 아이러니하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대외정책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주변 강대국들과 다 화목하게 잘 지내는 것이다. 유능하고 우호적이며 평화적인 이웃국가라는 형상을 추구해야 한다. 한반도 통일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다만, 최악의 안보국면에서는 덜 위협적인 국가와 협력해서 가장 위협적인 국가에 필사적으로 대항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는 국가의 생사존망을 걸 각오를 해야 한다.
현재의 한중이 직면한 국면이 과연 이리 필사적인 상황인가 스스로 되물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한중은 이번 9월4~5일 중국 항저우에서 개최되는 주요20개국(G20)회의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 당장은 문제 해결이 어렵겠지만 적어도 양국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웃국가라는 인식을 같이하고, 위기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우선, 한중 정상이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사드 문제는 일단 제쳐 두자. 추후 상호 간의 관심사에 대해 계속 논의해나가기로 합의하자. 대신 한중 간에 합의할 수 있고 한중 관계의 기반이 되는 문제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협력을 강화하자.
한중 해상 경계획정 문제를 두 정상의 임기 내에 타결할 수만 있다면 이는 박근혜 정부의 최대 업적일 것이다. 중국 일대일로 구상의 동북아 라인 확대, 북극시대에 대비한 공동의 협력체제 구축, 중국 동북3성과 한국의 경제협력 강화 등 많은 일들에 합의할 수 있다. 아마도 한중의 유구한 발전을 위해서는 당장의 사드 문제보다도 이런 문제들이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할 수 있다. 한중 정상은 서로 불편하더라도 양국 국민들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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