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가 다시 개혁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5월 서울 남부지검 형사부 소속 김 모 검사의 자살 사건이 불씨로 작용했다. 김 검사의 자살 배경에 업무 스트레스는 물론 부장검사의 폭언과 폭행이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검찰 안팎에서 조직문화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부당한 지시를 받더라도 법으로 보장된 이의 제기조차 못하고 인격을 무시하는 대우에도 항의하기 어려운 구태를 극복하지 못하면 제2의 김 검사는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검찰 입장에서도 조직을 지탱하는 철학이나 행동양식 자체로 인해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전문가들도 검찰이 소신을 갖고 정당하게 검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 개혁이 1순위 과제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사생활까지 점령한 ‘상명하복’ 문화=일선 검사들은 “부장검사의 권한은 막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7~8년차 검사들도 벌금 구형을 50만원으로 할지, 100만원으로 할지를 혼자 결정할 수 없고 부장의 지시를 따라야 할 정도다. 이 과정에서 지침이 부당하더라도 입 밖으로 꺼내기는 힘들다는 게 다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검사 출신 A 변호사는 “후배검사가 이의를 제기하면 곧바로 소문이 전국으로 퍼진다. 소문은 일을 잘한다거나 못한다는 평가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개인 습관까지 망라한다”며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평가에 민감해지고 상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더라도 감히 다른 얘기를 꺼내거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명하복 문화는 사생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또 다른 한 전직 검사는 “쉴 때도 부장이 나오라면 무조건 나가야 한다”라며 “퇴근 후 집에서 쉬는데 밤에 갑자기 불러서 나갔더니 그냥 한번 불러본 거라고, 용무 없다고 하더라”고 회상했다.
◇‘검사동일체 원칙’ 12년전 폐지…법 따로 현실 따로=학계 등에서는 검찰 내 상명하복 문화의 뿌리를 ’검사동일체‘ 원칙에서 찾고 있다. 검사 동일체 원칙은 법적으로 단독 관청의 지위를 지닌 검사들이 상명하복을 통해 하나의 통일된 조직으로 활동한다는 뜻이다. 재판 도중 검사가 교체되더라도 절차를 그대로 이어나가는 것을 포함해 일관된 검찰권을 행사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다. 다만 실제 검찰의 업무현장에서 이 원리는 검사의 자율성과 기개를 떨어뜨리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막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국회는 2004년 1월 검사동일체 원칙을 규정한 검찰청법 제7조 1항을 개정했다. 조항은 1949년 법이 제정될 때부터 ‘검찰 사무는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고 되어있다가 당시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는 내용으로 완화됐다. 또 ‘검사는 지휘·감독의 적법성이나 정당성 여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조항도 신설했다.
이후 실제 업무 처리 방식이 바뀌었을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최근까지 검사를 지낸 B 변호사는 “검사 시절 주말에 갑자기 부장검사에게 호출이 와서 ‘개인 사정상 힘들 것 같다’고 했더니 부장검사는 ‘검찰은 하나야. 개인이란 있을 수 없지, 그러니까 개인 사정도 없는 거야’라고 하더라”며 “이게 검사 동일체 원칙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는 “검사동일체란 말이 원래 어떤 의미였든 지금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복종해야 하고 개인적 의견이나 사정, 튀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의미로 인식된다”며 “평검사는 부장검사에게, 부장은 다시 그 상급자에게 복종하다 보면 결국 검찰 조직에 개인이라고는 검찰총장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건처리 공정지침 마련해 투명하게 시행해야=검사동일체 원칙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어렵게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사는 법무부에 소속된 행정관청이며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상명하복 관계에 있기 때문에 법관과 비교해 정치적 독립 요청에 취약하다”며 “검찰 고위 간부들이 손쉽게 조직을 장악하면서 정치권력에 화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검찰이 검사동일체 원칙과 관련해 형식적인 차원을 넘어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차원에서 폐지 선언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사와 공소 제기의 일관성을 위해 폐지가 시기상조라는 반대 주장도 있지만 이 역시 검사동일체 원칙과는 별개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 교수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준에 따라 검찰권을 균등하게 행사하는 일은 상명하복의 지휘계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정한 사건처리 지침을 마련해 투명하게 시행하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라며 “검사동일체 원칙의 폐지는 사법 민주화의 요청을 담은 검찰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김 검사 자살 사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검찰 내부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자정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검찰총장을 포함해 수뇌부들이 검사 동일체 원칙은 더 이상 없다는 선언을 하면 아무래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적으로는 하급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04년 검찰청법 개정 당시 이의제기 조항을 신설했지만 정작 구체적인 방법이나 이의 제기 후 불이익 방지 등에 대한 규정은 두지 않았다. 실효성을 갖추기 힘든 이유다.
/김흥록·서민준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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