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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의 철학경영] 항구에 머물지 말고 당장 바다로 떠나라

<25> 혁신 방해하는 안주 본능

빛 안나고 위험부담 많은 곳이

혁신의 기회가 가장 많은 장소

피하지 말고 위기 헤쳐나가야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원숭이들이 나무 위에서 시끄럽게 뛰논다. 서열이 엄격한 사회다. 덩치 큰 놈이 역시 두목 노릇을 한다. 두목에게 잘 보이고 싶으면 가서 털을 정성껏 골라 준다. 뭐 하나라도 얻어먹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힘이 세거나 아니면 힘이 센 놈에게 잘 보이거나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하는 것이 생존법칙이다. “사자의 힘을 길러라. 그렇지 못하면 여우의 꾀를 배워라.”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한 유명한 말은 원숭이 사회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사자의 힘도, 여우의 꾀도 제대로 갖지 못한 원숭이는 결국 나무에서 생존하는 터를 잃어버리고 나무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

황량한 땅에 먹을 것이 제대로 있을 리 없다. 재미있는 나뭇가지 놀이터도 시원한 나뭇잎 그늘막도 맛있는 나무 열매도 다 그립다. 그러나 왕따 당한 기억에 다시는 나무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땅에는 맹수들이 들끓는다. 여차하면 잡혀 먹힌다. 정신 바짝 차리고 주위를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일어나서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한다. 혼자 다니면 잡혀 먹히기 십상이니 여러 명이 같이 다니고 서로서로 돕는다. 결국 이 ‘찌질한’ 원숭이는 인간으로 변하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된다. 살아 남으려고 궁리를 많이 해서 뇌도 제법 커졌다. 바로 우리 인간의 조상 ‘찌질이 원숭이’ 스토리다. 메인에서 밀려나면 새로운 곳을 향해서 떠나야 한다.

프랑스 어느 마을에 저녁이 되면 젊은이들이 어슬렁어슬렁 모여든다.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저녁에 그림을 그리는 거의 백수 수준의 화가들이다. 물감 살 돈이 제대로 없다. 그러나 그림만큼은 그리고 싶다. 그런데 모여서 그림을 그릴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토론만 한다. 프랑스 미술대전에 자신들의 그림을 계속 출품할 것인지가 토론 주제다. 지난 수년간 꾸준히 출품했지만 자신들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인정해주지 않은 그 미술대전을 거부하기로 결정한다. 대신 자신들이 돈을 내 교통이 불편한 곳에 전시회를 연다. 미술대전에 당선되면 수십만의 인파가 구경하러 온다. 그러나 한 작품당 관객에게 노출되는 시간은 몇 초에 불과하다. 줄에 밀려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시회에서는 불과 몇 백명, 많아야 몇 천명의 관람객이 오지만 오랜 시간 편하게 구경하다 갈 수 있다. 이 젊은 화가들이 바로 역사에 길이 남는 인상파 화가들이다. 국전에 출품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그들이 내린 최상의 투자였다. 메인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변방을 개척해나가라.



조직 내에서 다 가기 꺼리는 부서에 자원한 적이 있는가. 위험부담이 큰 신규사업부서에 배치된 경험이 있는가. 민원인과의 마찰이 심한 부서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잔일과 야근을 반복하는 부서에 발령이 난 적이 있는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봐야 빛나지 않는 부서에서 일해본 적이 있는가. 다들 가기 꺼리는 곳만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왜? 밑져야 본전이고 잘하면 빛나기 때문이다. 못해봐야 욕하는 사람도 없다. 거기는 원래 그런 곳이니까. 그러나 잘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사실 혁신의 기회가 가장 많은 곳은 원래 잘나가는 곳이 아니라 지지리 궁상인 못 나가는 곳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현재에 안주하지 말라. 우리 조상보다 잘나가던 원숭이들은 지금도 나무 위에서 열매만 따 먹고 있지 않는가. 빠르게 인정받으려면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떠맡아라.

배가 가장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은 바로 항구다. 그러나 배가 지어진 목적은 항구에 정박해 있기 위해서가 아니다. 배를 건조한 목적은 저 험한 바다를 헤치면서 항해하기 위해서다. 상황이 어려운가. 그저 위험을 피할 생각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저 거친 바다를 헤쳐나갈지 그 생각만을 하라. 당신의 배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안전한 항구에 머물지 말고 저 거친 파도와 싸우는 바다로 나가라.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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