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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고는 '사회적 타살'이다

안전 규정 지킬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기술직 아닌 서울메트로 퇴직자 출신이 2~3배 월급 챙겨

시민들이 구의역 승강장에 자발적으로 추모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서울 구의역 승강장에서 만19세 청년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김씨는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은성PSD라는 서울 지하철 1~4호선 스크린도어 관리 업체에 취직했다. 그는 월 급여 140여만원을 받고 일하면서 ‘열심히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업체의 말을 믿고 그저 ‘열심히’ 일했다.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해달라는 접수를 받고 구의역으로 부리나케 달려간 그는 수리 시작 2분 만에 달려오던 전동차에 치여 숨을 거뒀다. 스크린도어와 전동차 사이에 낀 채로. 어머니가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죽음이었다.

▷ 반복되는 죽음에도 고쳐지지 않은 ‘스크린도어 사고’

2013년 1월 19일날 성수역에서도 스크린도어 정비공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이후 반드시 2인 1조가 작업을 해야 한다는 안전지침이 만들어졌으나 지난해 8월 같은 사고가 벌어졌다. 서울 강남역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정비업체 직원이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것이다.

서울메트로는 재발방지 대책으로 안전 작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로 유지관리업체 직영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6년 5월 28일, 또다시 판박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한 누리꾼은 “한 번, 두 번이 실수다. 세 번은 인재(人災)이자 명백한 살인”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 안전 규정을 지킬 수 없는 시스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사망한 사람 4명 가운데 2명은 은성PSD 계약직 직원이었다.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수리 외주업체인 은성PSD는 1~4호선 97개역(스크린도어 7,700여개)을 관리한다. 고장 신고는 하루에 보통 4∼5건, 많게는 10건 정도가 접수된다. 출동은 1시간 이내 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범칙금이 부여되고 차기 계약에 불이익이 있다. 그렇다면 수리를 전담하는 직원은 얼마나 될까.

서울메트로 등에 따르면 전체 143명의 임직원 가운데 자격증을 보유한 인원은 전체의 약 40% 가량인 41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대부분 6개월 단기계약직이다. 나머지 84명은 관련 자격증이 전혀 없다. 이들 가운데 40%가 넘는 58명이 서울메트로 퇴직자 출신이다.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은성PSD 정비공들은 주간A, B반으로 나눠 모두 14명이 전체 98개 역의 스크린도어 정비 및 관리 업무를 수행해왔다.

이처럼 적은 비용, 적은 인력으로 관리를 하다 보니 스크린도어 고장이 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수리를 위해 1인이 출동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안전규정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이유다.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구의역의 모습./연합뉴스


▷ 재주는 비정규직이 넘고, 돈은 서울메트로 출신이 챙긴다

일을 하는 사람이 그만큼의 보상을 받았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은성PSD는 지난 2011년부터 5년 동안 스크린도어 정비ㆍ관리 용역비로 서울메트로와 약 350억원 가량의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1년간 맺은 용역 계약도 70억~80억원 규모에 달한다. 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 유지 관리에 필요한 인력을 125명으로 추산하고 은성PSD에 매달 5억8,000만원 가량을 줬다.

그런데 은성PSD에서 비정규직 정비공의 월급은 평균 140만원, 정규직 정비공의 월급은 평균 200만원 안팎이다. 정비 인력이 모두 50여명 선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임금은 월 1억원 미만이다. 나머지 4억8,000만원 가운데 상당 부분은 기술직이 아닌 전직 메트로 출신에게 돌아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평균 350만~400만원 안팎의 월급을 지급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사망한 김씨가 당시 지니고 다니던 소지품들. 뜯지 못한 컵라면이 있었다./출처=구글


사망한 김씨는 한달 144만원을 받고 100만원을 저축했다. 그가 희망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김씨 어머니는 기자회견에서 “장남으로 책임감이 있어서 부모가 걱정하고 그만두라고 할까봐, 조금만 더 참으면 공기업 직원이 된다는 희망으로 참았나 보다. 차라리 책임감 없는 아이로 키웠다면..”하며 끝내 말을 못 잇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얼마 전 서울메트로가 자회사를 설립할 때 심사를 통해 일부 용역 직원들을 채용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울메트로 퇴직자를 채용하겠다고 명시한 문건이 공개되자 김씨는 최근 2개월 동안 휴일마다 서울메트로 본사 앞에서 ‘갓 졸업한 공고생 자르는 게 청년 일자리 정책인가’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었다고 한다.

▷최저가 낙찰제, 목숨을 담보로 한 계약

서울메트로는 유지 보수·관리 외주업체를 선정할 때 입찰을 붙여 가장 최저가인 업체를 낙찰하는 최저가 낙찰제를 택하고 있다.

최저가의 하한선은 명시되지 않았다. 금액으로만 환산 및 측정되고 내부에서 이를 어떻게 운용하는지는 관리하지 않는다. 전문적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최소한으로 받아야 하는 임금이지만 지켜야 하는 안전 규정 등은 ‘최저가’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다.

과잉경쟁이 있을 경우, 일감이 부족한 사업체들은 출혈을 감수해가며 저가 낙찰을 반복하게 된다. 이것은 비단 ‘스크린도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혈경쟁으로 단가를 대폭 낮춘 외주업체, 하청업체들이 일감을 따게 되면 해당 사업체가 적자를 보는 것은 물론, 시공비나 여타 필요 비용 등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인력 감축은 필연적인 결과다. 노동자 한 명이 짊어지는 업무가 과도해지고, 노동자의 안전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비용 절감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어쩌면 최저가로 낙찰된 것은 누군가의 가족, 친구, 연인의 목숨일 수 있다.

시민단체들은 “한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동일한 유형의 사망사고가 났다면 이는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책임 회피 행정을 위해 비용절감이라는 명목으로 안전 업무마저 하청을 주는 것은 그만해야 한다”고 규탄했다.

/김인경인턴기자 izzy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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