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쌓아올린 목재와 벽돌에는 거뭇한 시간의 흔적이 역력하다. 누군가 쓰다 버린 것임이 분명한, 폐자재로 지은 집이다. 1층보다 2층이 더 큰 역사다리꼴의 형태에는 땅을 갖지 못했으니 허공에 한뼘이라도 더 큰 집을 짓고픈 마음이 담겼다. 조혜진의 설치작품이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작품 안으로 들어가면 얼기설기 공간을 가르며 근근이 지탱하는 철 구조물이 보인다.
작품 ‘704-13호’가 자리잡은 곳은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명소이자 국내 최초의 대학미술관인 서울대미술관 앞마당이다. 흉물스런(?) 작품을 앞세워 미술관은 개관 10주년 특별전 ‘지속가능을 묻는다’를 열고 있다. 정영목 서울대미술관장은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다가올 100년 이후를 그려보기 위해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고민하고자 기획한 전시”라며 “지속가능성을 통해 동시대를 기록하는 증인이고 때 동시대의 정신을 이끄는 존재인 예술가들이 어떻게 미래를 예기하고 어떤 태도로 미래를 맞이하는지 확인하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조 작가는 어머니가 처음 상경해 살았던 동네를 다녀온 뒤 도시 속에 거주지로 구분되는 사회계층과 계급갈등, 이민자 문제와 향수 등을 다루기 시작했다. 서울시내 철거지역을 다니며 수거해 온 폐자재와 유리창틀이 작품 재료다. 그런가 하면 이인현 작가는 자신이 과거 완성한 구작(舊作)을 새로운 방식으로 가공해 선보인다. 이는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는 미술계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자 반발이다. 미술관 내 지하 2층에는 ‘회화의 지층-재생’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그림이 고고학 발굴장 형태의 설치작으로 놓였고, 주변 카페 테이블의 식탁보는 캔버스를 파란 안료로 물들인 그의 작품을 ‘재활용’한 것들이다.
작가 이완은 빗자루,세재,치킨 등 우리에게 주어진 소비대상을 무게 기준으로 재분류했다. 영상작품에서는 작가가 직접 사탕수수를 가공해 설탕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새로운 최종 생산자가 되려 애쓰는 예술가의 태도는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다. 화가 정직성은 연립주택 시리즈, 건축물을 해체한 공사장 시리즈에 이어 ‘녹색풀’ 연작을 선보였다. 서슬퍼런 초록빛은 이상향인 동시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전시장의 마지막은 김춘수의 일명 ‘울트라블루마린’이라는 푸른색 그림들이 채웠다. 깊은 바다인 듯 높은 하늘인 듯 숨통이 열린다. 지겨울 정도로 푸른색 만 고집하는 작가는 새로움과 변화가 곧 발전은 아니라며, 자기 안에서의 발전을 찾아보자 권한다. 박진영·이정민·이혜진·토마스 스트루트 등 총 8작가가 참여한 그룹전으로 7월24일까지 열린다. (02)880-9504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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