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는 브라질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지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 대통령을 역임한 그는 만성 채무국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을 정도로 궁핍했던 브라질을 순채권국으로 변모시킨 것은 물론 세계 8위, 남미 최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의 재임 중 2,000만명의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섰고 이 같은 경제 성과로 그는 퇴임 직전 지지율이 87%에 달하는 등 국민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다. 취임 전인 2002년 2.7%에 불과했던 경제성장률이 임기 마지막 해에는 7.5%에 달했고 같은 기간 빈곤층 비율은 21.3%에서 12.7%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으니 이 같은 지지율은 당연해 보인다.
룰라의 인기는 그의 최측근인 지우마 호세프를 브라질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2010년 대선 당시 야당 후보에 열세를 보였던 호세프가 결선투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온전히 정치적 스승이었던 룰라의 후광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룰라 퇴임 후 6년이 지난 지금 호세프는 물론 그의 스승 룰라, 그리고 브라질 경제 모두 아이러니하게도 벼랑 끝 위기에 서 있다. 룰라 재임 중 이뤘던 눈부신 성장의 자취는 간 곳이 없고 브라질 경제는 2014년 2·4분기 이후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말 6%대 초반이었던 실업률은 올 3월에는 10.9%까지 치솟았으며 호세프 대통령 취임 전 달러당 1.6613헤알이었던 브라질 헤알화 환율은 현재 3.5014헤알로 치솟으며 가치가 반토막났다. 경제 위기와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와 관련된 부패 혐의로 호세프 대통령은 직무를 정지당한 채 탄핵 심판대에 오르며 자칫 브라질 역사상 탄핵으로 물러나는 두 번째 대통령의 불명예를 떠안을 위기에 처했다. 그의 스승 룰라 역시 자칫 뇌물 수수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사법 처리될지도 모르는 상태다.
호세프와 룰라, 그리고 브라질 경제의 위기가 룰라의 최대 정치적 유산이 잉태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바로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다. 빈곤 퇴치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룰라는 물론 호세프 정부까지 온전히 계승된 핵심정책으로, 월소득 120헤알 미만 가구에 소득의 절반 이상인 70헤알을 지급하는 파격적 복지 정책이다. 브라질 인구의 4분의1이 직접 혜택을 보게 된 이 정책으로 룰라 재임 당시 2,000만명의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섰고 내수 활성화로 브라질 경제가 고속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꼽힌다.
볼사 파밀리아라는 파격적 복지정책은 저유가 장기화로 직격탄을 맞은 브라질 경제에 엄청난 부메랑이 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빈곤을 해결하고 내수를 살려 경제 성장을 촉진했지만 결국 경기 침체와 맞물려 브라질을 엄청난 재정 적자에 빠뜨렸다. 올해만 해도 브라질의 재정 적자 규모는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돈줄은 끊겼는데 씀씀이는 줄이지 못하니 나타난 당연한 결과다. 심지어 볼사 파밀리아에 재정이 집중되다 보니 보건소 등에 의약품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빈민층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재임 당시 룰라에 열광하던 브라질 국민들은 알았을까.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을. 공짜 점심이 온 국민의 배를 부르게 할 것으로만 보였지만 ‘경제 성장’이라는 커튼이 걷어 젖혀지고 나니 밥값을 치르고 있는 당사자가 바로 공짜 점심의 혜택을 받았던 자신들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있는 것이다.
성장을 위해 복지를 팽개쳐서는 안 된다. 복지는 성장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정책 목표의 균형이다. 복지 때문에 성장을 포기한다면 이는 포퓰리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무상보육·무상급식 등 끊임없이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반드시 필요한 복지인지, 아니면 성장을 담보로 한 공짜 점심인지 냉정하게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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