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펀드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은 현재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쌈지길’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뿐만 아니라 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를 통해 개인 고액자산가들로부터도 자금을 모으고 있다는 것. 전체 금액은 총 850억원으로 이 중 신한금융투자 개인고객들을 통해 최소 5억원 이상 총 200억원을 모집하고 있다. 이미 1차로 100억원을 모은 상태다.
8일 부동산금융 업계에 따르면 그간 ‘그들(기관투자가)만의 리그’로 여겨졌던 부동산 간접투자 시장에 개인투자자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기관과 개인투자자 영역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던 경계가 사라지면서 ‘돈이 섞이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또 있다. 리츠(REITs) 자산운용사인 마스턴투자운용은 최근 국토교통부에 ‘마스턴 제16호’ 영업인가를 신청했다. 마스턴 제16호는 서울 중구 A빌딩에 투자하는 리츠다. 마스턴은 전체 투자금액 1,332억원에서 대출을 제외한 나머지 450억원가량 중 절반을 기관으로부터, 나머지 절반은 은행과 증권사 PB를 통해 개인들로부터 조달할 예정이다. 개인 고액자산가들은 최소 3억원 이상이면 투자할 수 있다.
안성용 우리은행 WM자문센터 차장은 “지난해 말부터 개인자산가들이 부동산펀드 등 간접투자 상품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며 “이런 가운데 자산운용사들도 경쟁이 심화되면서 주로 기관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하던 것에서 탈피해 개인으로부터 조달하려는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도 개인 고액자산가들이 투자할 수 있는 부동산펀드 상품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기관들이 투자하는 상품과 고액자산가들이 투자하는 상품에 차이가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기관들을 대상으로 모집하던 성격의 상품에도 개인들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앞의 사례에서 보듯 최근 자산운용사들이 투자자 모집 시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 개인 고액자산가들과 접촉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 예로 코람코자산신탁은 최근 지방에 위치한 홈플러스 매각을 추진하면서 은행 PB들에 투자자 모집을 의뢰했다.
이처럼 개인과 기관투자가 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우선 지난해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신규 자산운용사가 대거 설립되면서 자금 조달처를 다양화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지스에서 개인투자자 모집을 담당하는 한 임원은 “기관 투자자금은 한정적인 데 반해 운용사 수는 계속 증가세에 있어 투자자의 다양성을 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저금리 기조가 굳어지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개인 고액자산가들이 부동산펀드나 리츠에 눈길을 돌리는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해 그간 고액자산가들의 부동산 투자 1순위로 꼽혔던 500억원 미만 중소형 빌딩의 경우 거래량과 거래 규모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거래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투자자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매물이 동났기 때문이다.
중소형빌딩 중개업체인 리얼티코리아에 따르면 올 1·4분기 500억원 미만의 중소형 빌딩 거래 건수는 192건으로 지난해 4·4분기의 258건에 비해 약 26% 감소했다. 수익률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난 2012년 평균 투자수익률은 6%대였으나 지난해 3·4분기에는 3.9%로 하락했다. 반면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은 이보다 높은 수익률로 개인투자자를 유혹하고 있다.
실제 이지스가 투자자를 모집하는 쌈지길의 경우 연평균 7% 이상의 수익률을 목표로 하며 마스턴 제16호는 연평균 6% 이상의 수익률을 추구한다. 또 개인들이 직접 중소형 빌딩을 사들일 경우 임차인 관리부터 매각까지 챙겨야 할 것이 많지만 부동산간접투자 상품을 활용할 경우 이 같은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판매사인 은행이나 증권사도 고액자산가들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부동산펀드를 다루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신한은행·KB국민은행·우리은행·KEB하나은행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지난해부터 부동산 투자자문업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흐름은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경돈 세빌스코리아 대표는 “저금리로 돈 많은 개인들이 갈 곳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견됐던 일”이라며 “개인들이 부동산 간접투자 시장에 들어오게 되면 기관 중심으로 투자자를 모집하던 때 보다 다양한 투자영역을 개발하게 될 것이고 시장도 보다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는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한국은 전체 부동산시장 규모에 비해 부동산 간접투자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작다”고 지적한 뒤 “부동산 간접투자시장에 개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주택에 한정됐던 부동산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할 수 있고 보다 안정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강준 지지자산운용 본부장은 “저금리 등 여러 요인으로 개인들이 부동산 간접투자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운용사는 수익과 안정성이 겸비된 펀드 구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현재 주로 사모 형태로 자금을 모집하는 부동산펀드나 리츠의 공모나 상장을 늘려 보다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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