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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들의 공격적인 돈 풀기로 달아올랐던 전 세계 부동산 시장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에서 가장 비싼 집값을 자랑하던 곳의 주택 가격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영국·호주 등지에서도 버블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7일(현지시간) 홍콩 토지등기소 발표에 따르면 홍콩의 지난 2월 주택매매 건수는 1,807건에 그치면서 25년 만에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1년 전에 비해서는 무려 70%가 급감한 수치다.
홍콩 주택매매 거래가 이처럼 위축된 것은 부동산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홍콩 공시지가발표국(RVD)에서 발표하는 주택가격지수는 지난해 9월 306.1로 정점을 찍은 후 올해 1월 278.7을 기록하는 등 넉 달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싱가포르 도시개발청(URA)의 부동산지수는 2013년 3·4분기 이후 계속 떨어져 현재 고점 대비 11.1%가 빠졌다. 특히 스탠다드차타드(SC)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싱가포르 부동산 가격이 5~10%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하락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수도 런던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가격이 치솟던 영국의 부동산에서도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모기지 업체 내셔널와이드빌딩소사이어티가 집계하는 영국의 주택가격지수는 1월 전월 대비 0.1% 하락했으며 2월에는 0.1% 상승하는 데 그쳤다. 더구나 다음달부터 주택 임대업자들과 다주택자들의 주택거래세를 3%포인트 인상하는 조치가 시행될 예정이라 영국의 주택시장이 봄부터 요동칠 수 있다는 경고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존 컨리프 영국 중앙은행(BOE) 부총재는 2일 "BOE는 영국 부동산 시장이 금융시장의 불안정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며 "부동산 매매비용이 올라가면 이게 부동산 매매가격을 낮출지, 월세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오는 6월 치러질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도 영국 부동산 시장의 불안요소다. 투표 결과가 브렉시트 찬성으로 나올 경우 금융기관들과 사업체들이 모여 있는 런던의 부동산 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호주 주택시장에서도 '오지(Aussie·호주를 뜻하는 속어) 버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아직 부동산 시장에 하락 조짐이 감지되지는 않았지만 2012년 대비 30%나 집값이 올라 버블이 언제 붕괴돼도 이상할 게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핌코는 하락에 베팅하는 '빅 쇼트'를 언급하며 "호주의 주택 가격이 정점에 가까워졌다"며 "이제는 부동산 이외의 자산투자를 통한 위험 회피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중국에서는 중소도시의 주택경기 침체와 대도시의 가격 폭등이 함께 나타나면서 정책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주요 도시 70곳 중 45곳에서 신규 주택 가격이 전년보다 떨어졌다. 지닝·진저우·인촨 등 도시의 가격 하락폭은 3~4%에 이른다.
반면 선전·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는 신규 주택 가격이 전년보다 각각 51.9%, 10.3%, 17.5% 상승하는 등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이 갈 곳을 잃고 이 지역들에 대한 투기수요로 몰리는 탓이다. 중국 인민은행 정책자문관인 바이중언 칭화대 경제학 교수는 "금리가 이미 크게 떨어져 있어 1선 도시들의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며 "중소도시에서 공급과잉을 줄이고 대도시에서 거품을 통제해야 하는 정부 목표는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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