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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파견법·기간제법 등 노동 5법 가운데 기간제법안을 중장기 검토 대상으로 돌렸다. 그 대신 파견법을 포함한 노동 4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왜 기간제법이 아니라 파견법일까. 배경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두 가지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선 기간제법을 고집하기에는 오해와 불신의 골이 너무 깊었다. 이유야 어쨌든 기간제법은 '장그래 죽이기법'으로 불렸고 그 순간부터 나쁜 법으로 낙인 찍혔다. 속속들이 들여다볼 마음도, 여유도 없었다. 아무리 35세 이상인 근로자에게만 해당되고 그마저도 그 근로자가 스스로 원하는 경우로 국한된다고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퇴직금 지급이나 이직수당, 쪼개기 계약에 대한 규제조차 마찬가지였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기간제법 포기는 노동 4법의 조속한 개정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그러면 파견법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골몰하고 있다. 여성과 고령자·청년 문제에 유독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따지고 보면 일자리를 새로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비어 있는' 일자리를 채우는 일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파견법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다. 고령자에 대한 파견 허용이 그런 경우다. 55~79세 장년층의 61%는 계속 일자리 갖기를 희망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지만 고령자가 개별적으로 구직활동에 나서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나마 파견제도의 틀을 활용하면 훨씬 수월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 '조직화'되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뿌리산업 파견도 마찬가지다. 주조·금형·용접 등 기술을 활용하는 중소기업은 일감이 늘어나도 인력을 제때 구하지 못해 안달한다. 일일이 구인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구직자는 구직자대로 고충이 크다. 매번 일감을 찾아 나서야 하고 설사 일감을 구한다고 해도 좋은 근로조건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뿌리산업 중소기업의 절박한 현실이 파견법 개정을 선택하는 데 한몫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노동법 입법자는 부지런해야 한다. 노동시장이 변하면 법제도도 그런 변화에 알맞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노동법이 개정되면 영영 바뀌지 않을 것처럼 다툰다. 오죽하면 헌법 개정보다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올까. 독일에서도 파견법은 우리 못지않게 예민한 주제다. 그래도 수차례에 걸쳐 파견에 관한 규제를 변경했다. 상한기간 변경만도 수차례다. 급기야 하르츠개혁 과정에서는 상한기간을 아예 폐지했다. 법 개정내용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변경의 '유연함'이다. 법이 개정되면 그 효과를 추적·관찰하고 다시 대응책을 내놓는 식이다. 경제상황이 좋아진 지금 독일은 또 다른 방향으로의 법제도 개선을 꾀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도 그런 '열린' 노동개혁이었으면 한다.
비정규직 없는 노동시장이 최선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논란만 거듭할 수는 없다. 현실을 좀 냉정하게 보자는 말을 하고 싶다. 당장 비정규직을 완전히 폐지할 수 없다면 우선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충이라도 덜어주는 게 옳다. 이것이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인지는 되묻고 싶다. 만약 순수한 비판이 아니라 프레임 싸움이라면 수긍할 수 없다. 그 프레임 안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파견법의 오남용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도 일리가 있다. 그게 문제라면 오남용을 막을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무작정 반대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시작한 것이 노사정 대타협이요 노동개혁 아니었던가.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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