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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중국 벤처투자의 산실인 베이징 중관춘의 창업거리(이노웨이·Inno-way). 최근 확산되고 있는 중국의 창업 열풍에 북적거릴 것으로 예상했던 거리는 의외로 한산했다. 1년 전 방문했을 때 창업 아이템을 놓고 격한 토론을 벌였던 창업카페들도 노트북을 열고 일하는 사람들만 보일 뿐 조용하기만 했다. 게놈프로젝트로 창업에 성공한 BGI의 부사장인 쉬쉰 박사를 만났던 처쿠카페의 회의실이 그나마 예비창업자들의 프로젝트가 열리는 등 활기를 보였다.
중국 경제의 미래로 불리던 중관춘이 고민에 빠졌다. 겉으로는 여전히 창업 열풍이 중관춘을 휩쓸고 있지만 창업자금 흐름에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며 창업시장도 다소 위축되는 분위기다.
창업시장의 돈줄에 이상이 생긴 것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증권시장의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다 창업자들이 손쉬운 인터넷금융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개인간거래(P2P) 대출회사 창업으로 쏠리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중국 창업투자펀드인 중국네트의 장샹닝 회장은 "중관춘의 외형은 커가지만 성공확률은 점점 줄고 있다"며 "이 때문에 창업투자 심사를 좀 더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관춘의 외형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커가고 있다. 지난해 중관춘 국가자주혁신시범구에 입주한 기업들의 매출은 전년보다 13% 늘어난 약 4조위안(73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전자상가였던 이곳이 불과 3년 만에 세계 최대 창업 클러스터로의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중관춘의 변신은 시진핑 정부의 정책지원과 연구개발이 만들어낸 결과다. 2013년 9월 당 중앙정치국의 집단교육을 시작으로 중관춘은 인터넷 기반 제품과 기술 기업이 속속 등장했다. 지난해 3·4분기 누계로 중관춘 기업이 보유한 유효 발명특허 수는 4만3,113건으로 베이징시 전체 발명특허의 62.9%를 차지한다. 바이두·징둥·신웨이그룹·중국중티에·징둥팡 등 시가총액 1,000억위안 이상 기업 5개가 자리 잡은 곳도 바로 중관춘이다. 2014년 6월 오픈한 창업거리는 지난 1년간 총 9만여명의 창업자를 배출하며 하루 평균 1.6개의 스타트업 기업이 탄생했다. 지난해 중국 전체 창업투자 금액의 3분의1을 중관춘이 흡수했다.
하지만 경기둔화와 증시폭락에 중관춘은 시름에 빠졌다. 창업성공 신화를 썼던 기업들도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일명 '유니콘'으로 불리는 1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보유한 중국 스타트업 기업들도 주가폭락에 버티지 못했다고 전했다. 19일(현지시간) 기준 뉴욕증시에서 알리바바 주가는 10% 이상 급락했고 텐센트도 11% 가까이 떨어졌다. 물론 중국 유니콘들이 '합병' 전략으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중국판 우버인 '디디콰이디'는 텐센트 계열 디디다처와 알리바바 계열 콰이디다처가 합병한 유니콘으로 수익모델을 극대화하고 있다. 텐센트가 투자한 중국의 인기 패션사이트 모구지닷컴도 경쟁사이자 중국 최대 뷰티쇼핑몰인 '메이리슈어'와 인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그나마 유니콘급으로 성장한 업체나 이들이 투자한 스타트업들은 이미 확보한 자금과 인수합병(M&A) 전략으로 혹한을 버티고 있지만 이들을 제외한 스타트업들은 초기 투자자금을 까먹은 채 좀비 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중국 경제전문 매체 차이신은 선전증시에 상장된 스타트업의 20%가 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서며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도 스타트업들의 부실에 바짝 신경 쓰고 있다. 과잉생산에 따른 국유기업의 부실이 중국 경제에 독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판 벤처거품까지 붕괴될 경우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공급측면 개혁의 일환으로 좀비기업 정리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근 리커창 총리는 국무원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좀비기업 구조조정이 공급측면 개혁의 핵심"이라며 "시장 퇴출 등 정리방안을 신속히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중관춘도 체계적인 스타트업 기업 관리를 위한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가자주혁신시범구는 '빅데이터 산업발전 로드맵'을 발표하고 오는 2020년까지 관련 혁신기업 600개와 6,000개의 응용기술 보유기업을 육성해 3조위안 규모의 빅데이터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 계획이다.
인재영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공안국은 해외국적 중국인(화교)이 중관춘에서 4년 이상 창업기업 활동을 벌이거나 연간 6개월 이상 중국 내 거주 중 한 조건만 충족하면 베이징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자국 내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제한 규정 역시 창업의 경우 배제하는 등 해외 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베이징=김현수특파원 hs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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