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지켜라 연 34.9%금리… 막아라 서민 고리 폭탄

대부업법 공백 사태… 강남구 단속현장 가보니

강남구청 지역경제과 유통관리팀 직원들이 지난 11일 양사록(뒷줄 가운데) 본지 기자와 함께 지역 내 한 대부업체 사무실을 방문해 대부계약서 등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제공=강남구


법 시효만료로 연1000% 초고금리 사채 현실화 우려

지자체 행정지도 강화… 단속반 5명이 500여업체 맡아

대부분 간판도 없이 영업… 대부업체 직원과 실랑이도

"장기화 땐 인력 한계… 조속한 입법으로 피해 줄여야"


서울 지역의 체감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지난 11일 오후. 두꺼운 외투 차림으로 무장한 남성 3명과 여성 1명이 강남구청 인근에 있는 허름한 5층 건물 앞에서 몇 마디를 나누고는 곧장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 건물 4층에 있는 대부업체를 점검하기 위해 나온 강남구 지역경제과 유통관리팀 직원들이다. 목에 걸린 공무원증과 손에 들고 있는 대부업체 행정처분 가이드라인을 담은 책자가 없으면 영락없이 일반 행인으로 착각할 정도다.

점검팀을 인솔하는 강민정 팀장은 "불법·악덕 대부업체를 불시점검해 위법사항이 발견되면 행정조치를 취하는 게 우리의 주된 임무"라고 말했다. 이날 점검한 대부업체는 사무실 출입구에 간판도 없이 은밀하게 영업을 해오고 있었다. 등록된 사채업자이기는 하지만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강 팀장은 "대부업체들도 영세하다 보니 월세가 적은 허름한 빌딩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영업을 하는 곳이 많다"며 "간판이나 안내문도 없어 대부업체라는 사실을 외부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무실 철문을 밀고 들어서자 4~5평 남짓 되는 작은 공간에 30대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인사를 건네며 점검팀을 맞는다. 온몸에 문신을 했거나 몸집이 큰 '덩치'는 아니었지만 바깥 날씨와 맞물려 몸이 움츠러들었다.

강 팀장이 대부업체 '사장'에게 방문 목적 등을 설명하는 사이 다른 팀원들은 사업자등록증 확인 등 위법사항을 빠르게 점검해나갔다. 점검팀은 고객과의 계약서도 꼼꼼히 훑었다. 법상 규정한 최고금리인 연 34.9%를 넘게 계약했는지 체크하기 위해서다. 고객 리스트는 대부분 20대 여성들의 신상명세였다. 점검팀 관계자는 "유흥업소 여성들을 상대로 한번에 100만~200만원 정도의 소액대출 영업을 주로 하는 업체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업체 홈페이지도 점검 대상이다.

이날 점검에서 광고문안을 표기할 때 글자 크기와 관련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300만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만 소득 증빙을 청구해야 하는데 그 이하의 소형 계약에도 소득 증빙을 청구한 것 등 법규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 법규 위반은 과태료나 영업정지 처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위반사실확인서에 서명을 받을 때 대부업체 사장과 격렬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점검팀은 마지막으로 '행정지도를 받은 업체'임을 알리기 위해 출입문에 안내문을 붙이도록 한 뒤 다른 장소로 급히 이동했다.

이날 대부업체 출입문에는 '2016년 1월1일부터 전국의 모든 대부업체는 최고금리 연 34.9% 이내의 대출이자를 받도록 행정지도를 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행정지도 위반 시 국번 없이 1332로 신고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큼직하게 붙었다.



점검 뒤 안내문만 달랑 붙이면 단속 실효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강 팀장은 "점검팀이 꾸준히 행정지도를 실시하면 행정당국이 불법금리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게 돼 대부업체들의 불법적인 활동을 예방하는 효과는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날 점검은 법정 최고금리 한도를 34.9%로 제한하는 규정을 담은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이 지난해 12월31일로 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실시됐다. 대부업법 시효 만료에 따른 입법 공백으로 올해 1월1일부터는 기존 금리 한도 이상의 고금리 계약을 맺어도 과태료나 영업정지를 내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업체들이 기존 법정한도 금리를 초과하는 금리로 돈을 빌려줘도 막을 길이 없어 서민들의 피해가 우려되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들이 단속에 긴박하게 나서고 있는 것이다. 강남구뿐 아니라 서울 25개 자치구 역시 대부업체 행정지도에 비상이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금리규정을 위반하지 말라'는 엄포를 놓는 수준이지만 대부업체가 독한 마음만 먹으면 연 100%나 연 1,000%의 고리계약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이날 점검 결과 입법 공백을 틈탄 고금리 계약 사례는 '다행히' 한 건도 적발되지 않았다. 강 팀장은 "중소 대부업체들은 대부업법의 시효가 만료된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초고리 대출의 빗장은 완전히 열려 있는 상태다. 강 팀장은 "기존 최고금리를 초과하는 금리로 대부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관련 법의 시효가 만료돼 행정처분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급전을 쓰는 서민들이 안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어 강남구는 일일이 대부업체를 찾아다니며 행정지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업체들이 적정 금리를 지키도록 협력을 구하는 일종의 '부탁'인 셈이다. 팀 관계자는 "행정지도라는 게 '법에는 없지만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훈화하는 정도"라며 "그 이상의 강한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고 현실적인 한계를 털어놓았다.

문제는 입법 공백이 장기화하면 인력운용에 과부하가 걸려 단속에 한계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행정지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수 있다.

실제 대부업체 점검을 맡고 있는 강남구 유통관리팀은 새해부터 업무폭탄을 맞았다. 이날 점검 대상이 된 업체는 6개월간 대부거래 건수가 14건에 불과한 작은 업체였다. 강 팀장은 "원래는 대출 규모가 이렇게 작은 업체는 점검하지 않았는데 올해 대부업법 시행 만료로 점검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입법 공백을 틈탄 고금리 계약은 행정처분에 민감한 대규모 대부업체보다는 계약 건수가 적은 중소형 대부업체들에 더 큰 유혹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속팀은 대형 대부업체의 경우 하루에 2건, 소규모 업체들을 대상으로는 하루에 3건씩 방문해 단속에 나선다. 이날 첫 점검에 나선 대부업체는 14건의 대부계약을 맺은 소규모 업체지만 이것저것 점검하다 보면 보통 2시간 정도는 훌쩍 흐른다. 유통관리팀 소속 인력이 모두 5명인 점을 감안하면 강남구에 있는 500여개의 대부업체를 일일이 감시하기는 역부족인 셈이다. 강 팀장은 "정식 팀원 3명에 최근 2명을 계약직으로 고용했지만 여전히 인력이 부족해 수많은 대부업체를 일일이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대부업체 직원들과 실랑이도 해야 하니 근무여건도 위험하다. 구청 내 '험지 1순위'로 다들 기피하는 부서다. 사실 남자 직원들도 벅찬 일이다. 하지만 여성인 강 팀장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며 "하루에도 1~2건씩 끊이지 않는 민원인들로 여직원들이 울기도 하고 대부분 1년을 못 버티고 전출을 신청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강남구는 신연희 구청장이 불법 대부업 단속을 직접 챙기다 보니 상대적으로 근무여건이 나은 편이다. 1명이 이 일을 도맡아 하는 구청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강 팀장은 "고금리로 고생하는 서민들 사연을 접할 때마다 안타깝다"며 "우리라도 열심히 나서서 단속해야 고금리 피해를 조금 더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냐"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고금리 피해를 보지 않게 국회에서 법이 빨리 통과됐으면 한다"며 신발 끈을 다시 매고 다른 대부업체로 걸음을 옮겼다. /양사록기자 sarok@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