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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은법 개정 독배를 누가 들 건가

내년 4월 금통위원 4명 임기만료… 과반수 일시교체땐 리스크 커져


한국은행 직원들을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내년 4월을 걱정한다. 총선을 말하는 게 아니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 4명이 내년 4월 임기 만료돼 한꺼번에 교체된다는 데 있다. 통화정책의 연속성과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 본다면 멤버 7명 가운데 4명이 일괄 교체되는 것은 초유의 사건이다. 더구나 당연직 금통위원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하면 추천직 대부분이 일시에 바뀐다. 시기적으로도 대단히 민감하다. 미국이 금리 인상에 돌입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유럽과 일본·중국 중앙은행은 돈을 더 풀 수도 있다.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주요4개국(G4) 중앙은행이 제각각 통화정책을 편다면 기축통화 국가가 아닌 한국으로서는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 여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달은 이명박 정부 시절 임기 만료된 박봉흠 금통위원의 공석을 2년 동안 채우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추천직 금통위원은 임기 구조상 2명, 3명씩 교체됐다. 돌이켜보면 임기 4년의 위원을 2명, 3명씩 교체하는 구조부터 화근이다.

만약 내년 봄 4명이 한꺼번에 바뀌면 그로부터 4년 뒤인 오는 2020년에는 한은 새 부총재 임기마저 끝난다. 2개월의 시차가 있긴 하지만 5명이 일괄 교체되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번에 금통위원 일괄 교체 문제를 어물쩍 넘어가면 4년 주기로 금통위원 과반수 이상이 일시에 교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국회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모양이기는 하다. 금통위원 연임 기간을 단축하는 방법으로 교체 리스크를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는 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다. 국회 논의에 진전이 없다는 구실로 한은법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하기야 새해 예산과 세법 같은 당면 법안도 산적한데 한은법 개정 운운하다가는 한가하다는 소리 듣기 딱 알맞긴 하다.

정작 문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당사자인 한은이다. "4월에 정치권 낙하산을 비롯한 소위 '폭탄'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한숨만 쉴 뿐이다. 법 개정 권한이 없다는 논리 뒤로 숨은 듯한 인상도 풍긴다. 전직 금통위원은 "한은은 한은법 개정에 트라우마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이 바뀌는 과정에서 여러 대안이 삽입되면서 한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멀리는 지난 1998년 한은법 파동부터 가까이는 2011년 금융안정 책무를 추가하면서 규제 권한을 두고 정부와 갈등을 겪은 경험이 그것이다.

지금 국회에는 한은법 개정안이 다수 올라와 있다. 금통위원 정족수를 7명에서 9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나왔다. 한은 정책 목표에 '고용'을 추가하는 법안도 계류 중인데 한은에서는 썩 내키지 않은 눈치다. 가뜩이나 통화정책 독립성이 흔들리는 마당에 고용을 정책목표에 넣는다면 옴짝달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국회가 한은법을 손질하겠다고 작정한다면 여러 법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밖에 없다. 모든 정책이 그렇지만 한은법 개정 역시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 판단의 문제다. 미국 연준은 물가와 고용안정을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 정족수만 해도 미국과 일본은 각각 12명, 9명이다.

법 개정이 정 어렵다면 금통위원이 결자해지하는 방안이 있다. 임기 만료 금통위원 가운데 누군가 먼저 사직하는 독배를 드는 것이다. 불명예 퇴진도 아니다. 금통위원 스스로 금통위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의지표명은 한은법 개정의 강력한 명분과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은법 개정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글로벌 통화 전쟁 통에 우리는 수뇌부 구성을 두고 머리를 싸매야 하는 꼴이 말이 아니다. 어쩌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금통위의 위상이 추락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주열 총재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권구찬 경제부장 chan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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