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 224명의 사망자를 낸 러시아 여객기의 사고원인은 '추락'일까 '격추'일까. 러시아 여객기 사고는 당초 기술적 결함에 따른 추락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국면이 급반전됐다. IS의 이집트지부는 사고 이후 트위터 계정에 "여객기 격추는 러시아가 무슬림과 IS에 보인 적의와 시리아 알레포에서 저지른 학살의 대가를 치르게 되는 시작이다. 러시아 여객기의 '십자군'을 모두 죽였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여객기 사고가 발생한 당시의 상황만 보면 일단 격추보다 추락 쪽에 무게가 실린다. 카이로공항 측은 사고 직전 기장이 "무선통신 장치가 고장 나 비상착륙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레이더에서 사라지기 직전에는 가장 가까운 공항에 비상착륙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여객기와 공항의 교신 내용만 보면 IS의 지대공미사일에 의한 격추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미사일 공격을 받은 여객기가 공항 관제센터에 문제가 발생했다며 비상착륙을 요청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미사일에 피격됐다는 물리적 증거도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집트 보안당국은 "격추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비정상적인 활동'이 배후에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이집트 포털사이트 '이오움7'도 자국 항공 분야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여객기는 엔진 문제로 추락했다"며 "미사일 피격 흔적은 없다"고 전했다. 러시아 TV방송 RBK는 "사고기가 이륙 전 충분한 기술점검을 받지 못한 정황이 발견됐다"며 "18년을 운항한 여객기의 기술적 결함이 사고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사고 여객기는 지난 1997년 제작돼 20년 가까이 사용돼온 항공기로 코갈림아비아 항공은 3년 전부터 이 여객기를 운항했다. 사고 항공기 부조종사의 아내인 나탈랴 트루카체바는 러시아 국영 NTV에 출연해 "남편이 비행 직전 항공기의 기술적 상태가 바라던 수준에 못 미친다면서 불평했다"고 전했다. IS가 고도 1만m 상공을 비행하는 여객기를 추락시킬 대공 능력을 갖췄을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도 격추보다 추락 쪽에 힘을 실어준다. 사고 당시 여객기의 고도는 9,000m 안팎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러시아 여객기 사고 장소나 시점 등을 감안하면 IS의 소행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여객기 추락사고가 일어난 지점은 IS 이집트지부의 근거지인 시나이반도 중북부 산악지대다. 더구나 이번 사고는 10월30일 IS가 시리아에서 자신들에 대한 공습을 개시한 러시아에 '성전'을 선포한 직후 발생했다. IS는 최근 각종 동영상 등 홍보매체를 통해 서방 방공사의 여객기 공격을 선동해왔다. 러시아 여객기를 격추했다는 IS의 주장을 무시하기에는 사고 지점이나 시점이 너무나 공교롭다. 일각에서는 IS가 지대공·지대지미사일 등을 다량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7월에는 이집트 군함 1척이 지중해 동부연안에서 IS 추정 세력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정확한 사고경위는 블랙박스 분석이 정확히 이뤄진 뒤에나 규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집트 정부는 사고 여객기의 꼬리 부분에서 블랙박스를 회수해 분석에 착수했다. 여객기 사고가 IS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세계 항공업계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기 격추가 가능한 IS의 대공 능력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면서 항공업계가 대공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IS의 본거지인 중동지역 정세도 시계 제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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