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수 백 가지의 편견 속에서 살아간다. 성별, 고향, 국적, 가정형편, 학벌, 신체 상황, 결혼 유무, 직업, 종교...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이 많은 편견에 갇혀 사람을 판단하고 심지어 차별하기도 한다. 내가 당하는 차별은 억울해하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쉽게 편견의 잣대를 들이댄다. 우리는 모두 편견에 관해서는 피해자임과 동시에 잔인한 가해자인 것이다. 흔히 말하는 뒷담화의 90%를 잘 들어보면 모두 편견에 치우친 인물평이다.
내가 그 뒷담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이다. 날 알지도 못하고 나와 일해보지도 않았고 깊은 대화 한번 나눠보지 않은 사람이 편견으로 가득한 정보를 타인에게 듣고 나에 대해 선입견을 갖는다면 이보다 더 어이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아니라고? 과연 그럴까? 편견이 무서운 이유는 그 그물망이 워낙 넓고 기준이 없다는 데 있다. 누구도 편견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편견의 비열함은 약자에게, 소수자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데 있지만 지금 잘나간다고 영원히 안심할 수도 없다.
영화 '필라델피아'(1993년작)의 주인공 앤드류(톰 행크스 분)도 에이즈에 걸리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이름있는 법률사무소의 촉망받는 변호사 앤드류는 동성연애자다. 앤드류는 회사 사활이 걸린 중대한 재판을 맡을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고소장을 마감 전날 잃어버린 일로 해고당한다. 사실은 앤드류가 에이즈 환자임을 알아챈 회사의 부당한 해고였다. 이에 대해 앤드류는 법정투쟁을 결심하지만 그가 에이즈 환자임을 안 동료들은 변호를 거부한다. 앤드류는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흑인 변호사 밀러(덴젤 워신턴 분)을 찾아간다. 밀러 역시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앤드류에게서 수많은 차별을 받았던 자신의 모습을 본다. 또한 앤드류의 정의에 대한 신념에 공감하면서 변호를 맡는다. 밀러는 앤드류를 통해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에서 조금씩 벗어나 모든 사랑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단지 법률적 의미가 아닌 인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모든 사람은 인종, 종교, 피부색, 성적 기호와 상관없이 존중받아야 된다는 것을 배심원들에게 호소한다. 결국 앤드류는 승소를 하고 가족들과 연인 미구엘(안토니오 반데라스 분)의 이해와 사랑 속에서 세상을 떠난다. 영화 제목 '필라델피아'가 상징하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남긴채.
이 영화는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인권문제를 다뤘지만 사실, 주인공을 장애인, 여성, 난민, 다문화 등등으로 바꿔도 충분히 공감을 얻어냈을것이다.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혼자서는 돌아다닐 수도 없고 학교에 갈 수도 없고 인권이라는 단어가 사치인 곳도 꽤 있다. 그런 곳에서는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차별의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앤드류처럼 용기있게 저항할 수 있었을까? 나는 못했을거다. 앤드류 역시 자신의 사생활과 인격이 가족들과 대중 앞에서 낱낱이 파헤쳐지는데 그런 고통을 나는 이겨낼 자신이 없다. 어쩌면 동성애나 이슈가 될만한 차별보다 우리를 좌절시키는 것은 미세먼지처럼 사회에 떠다니는 소소한 편견들이다. 사는 동네, 부모 직업, 학교 성적에 따라 친구를 결정한다는 믿을 수 없는 요즘 세태를 전해들으며 얼마나 우리가 큰 죄를 짓고 있는지, 이 엄청난 교만이 부끄럽다. 누구를 차별할 자격이 우리에겐 없다.
조휴정 KBS PD (KBS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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