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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증거’가 없어 소송 못하는 사람 없게…‘한국형 디스커버리제’ 법제화 본격 추진

(취)‘증거’가 없어 소송 못하는 사람 없게…‘한국형 디스커버리제’ 법제화 본격 추진

최근 김모씨는 새로 이사 온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운행소음 탓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엘리베이터가 운행될 때마다 안방까지 큰 소음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설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보려고 변호사에게 문의했지만 부정적인 답변만 들었다. “시공상 하자를 증명할 증거가 모두 건설사에 있을 텐데 회사가 이를 쉽게 내주려 하겠냐” “소송을 제기한 뒤 법원을 통해 문서증거를 제출하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제출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특별한 불이익이 없어 효과가 없다” 등등. 김씨는 결국 전세기간이 끝날 때까지 그냥 참고 살기로 했다.

이렇듯 민사소송을 준비하거나 진행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잘못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개인이 기업이나 국가를 상대로 문제 제기하는 경우 특히 그렇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소송 당사자의 증거확보능력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소송 제기 전 증거조사제도)’의 입법이 국회에서 추진된다.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법제사법위원장)은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 도입을 담은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이르면 다음 주 발의한다고 19일 밝혔다. 이 제도는 대법원이 사실심(1, 2심)을 충실하게 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추진해온 사안으로 이 의원은 제도 취지에 공감해 입법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는 소송 제기 전에 신속하게 증거 수집과 조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금도 소송 당사자가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증거보전제도’가 있지만 분쟁 상대방이 증거를 갖고 있는지, 증거가 은폐될 위기에 처해 있는지 등을 증명해야 해 제도 이용이 매우 어려웠다. 실제로 지난해 이 제도를 이용한 건수는 184건에 그쳤다. 한해 민사소송 1심 본안사건만 100만건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반면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는 ‘민사상 다툼과 관련이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소송 당사자에 이익이 있다’는 점만 증명하면 신청할 수 있어 문턱이 매우 낮다. 또 이 제도에 따른 증거조사는 가처분 사건처럼 ‘패스트 트랙’으로 진행돼 빠른 증거확보가 가능하다.

개정안은 문서증거를 제출하라는 ‘문서증거제출명령’을 거부할 경우 제출을 신청한 당사자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는 규정도 담았다. 가령 상기한 아파트 소음 피해 사례에서 김씨가 시공 관련 도면자료를 요구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건설사 측이 도면 제출을 거부하면 “시공상 하자로 엘리베이터 소음이 생겼다”는 김씨의 주장이 진실로 인정받게 된다. 지금처럼 증거가 없다고 버텼다가 큰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증거은닉, 위조가 우려되는 경우 법원이 ‘증거유지명령’을 내리는 규정도 신설됐다. 증거유지명령을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개정안엔 증거조사제도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도 담겼다. 법원은 국가 안보나 사생활의 비밀를 해칠 우려가 있거나 기업의 영업상 비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증거조사를 안 할 수 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제의 대표적인 적용 대상으로 의료사고 피해자가 병원을 상대로 제기하는 의료소송이 거론되지만 그 외의 소송에서도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억울하게 해고당한 알바생이 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을 입증하고 싶을 때, 퇴직한 직원이 경쟁사에 영업비밀을 유출한 사실을 증명하고 싶을 때 등이다.

이 의원은 “한국형 디스커버리제가 도입되면 증거 확보가 어려워 권리 주장을 포기했던 사람들의 권익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법원도 소 제기 전에 증거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 사실심에서 충실한 심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소 제기 전 증거들이 숨김 없이 공개되면 소송까지 가지 않고 화해나 조정으로 분쟁을 끝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분쟁해결비용과 기간이 줄어드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서민준기자 morando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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