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다양한 탈놀이를 국가문화재로 지정한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잘 아는 송파산대놀이·양주별산대놀이를 비롯해 서북지방의 봉산탈춤·강령탈춤·은율탈춤 등과 영남지방의 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가산오광대·수영야류·동래야류가 있다. 이 밖에 계통을 달리하는 하회별신굿탈놀이와 북청사자놀음·처용무·남사당놀이가 있는데 이들 14종의 탈놀이는 지난 1964년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국가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보존, 공연되고 있다.
산대란 '무대'라는 말로 중부지방의 탈춤을 가리킨다. 춤과 무언극, 덕담과 익살이 어우러진 민중놀이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산대에서 분파된 별도의 산대놀이라 해서 별산대로 불린다. 우리나라 가면극 중 연극적인 볼거리가 가장 풍부한 가면극일 것이다.
남사당놀이는 민중이 시작해 민중을 위해 놀던 놀이다. 권력으로부터 천대받던 한과 양반사회의 부도덕성을 놀이를 통해 비판하며 해소하고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민족예술의 근간이 돼 문화재로 지정됐는데 남사당놀이의 주요 부분이 인형가면극이다.
오광대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부산 동래·수영 지방에서는 야류(들놀음)로, 통영·고성·가산 지방에서는 오광대로 불린다. 오광대놀이는 고단한 백성의 삶의 모습과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와 첩의 문제 등을 풍자하고 있다. 가면 인물 중 말뚝이는 양반에 대한 조롱과 비판이 상상을 넘어 이를 보는 백성들에게 통쾌한 대리만족의 즐거움을 준다.
야류는 넓은 들판에서 한판 논다는 의미로 내용은 양반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 주를 이룬다. 특히 말뚝이춤과 양반춤의 풍자와 해학이 걸쭉하다.
이 밖에 북청사자놀음은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삼국시대 이래 민속놀이로 정착된 가면놀이이며 봉산탈춤은 서민들의 가난한 삶과 양반에 대한 풍자,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일부다처제에 따른 남성의 여성에 대한 횡포를 풍자하고 고발한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말뚝이가 당시 최고권력자인 연산군을 놀려먹는 통쾌한 장면이 나온다. 처용무란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에게 자신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서 권력에 대항했다는 내용이다.
양반사회를 대표했던 안동의 하회별신굿은 복면 탈을 쓰고 지배계급인 양반사회를 통렬하고 적확하면서도 풍자와 해학이 있는 예술성으로 비틀고 꼬집는 놀이인데 국가가 이 모든 탈놀이의 정통성·예술성·독자성·풍자성·해학성을 인정해 문화재로 지정했다.
우리나라 탈춤의 기원은 천체기원설·가악설·처용가무설·잡색놀이설·산대도감설 등 다양하지만 복을 바라고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주술적 기능에 춤을 더한 것으로 본다면 천체기원설에 더 무게를 둘 수 있을 것이다.
탈놀이는 초기 농경사회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이 동시에 시작했지만 점점 민중의 놀이로 변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놀이가 진행될 때 가진 자들은 탈놀이를 배척· 방해하기보다 놀이에 필요한 쌀(자금)과 마당(장소)을 제공하며 민중의 탈놀이를 암묵적으로 지원했다. 민중이 한바탕 난장을 통해 묵은 감정과 불만을 표출하는데 오히려 이런 놀이를 통해 생활의 활력과 기를 불어넣었다.
탈놀이는 합법적 익명을 통한 저항의 표출이며 풍자·해학의 미학을 담은 놀이다. 가진 것 없는 백성들에게 익명성은 최소한의 자유이며 자신을 보호해주는 무기이기도 했다. 익명성이 없는 놀이와 표현은 박제된 행위에 불과하다. 익명성의 가장 원초적 형태인 탈은 민중에게 용기와 과감한 표현력을 제공한다. 우리는 이런 탈놀이들을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고 전파하는 자랑스러운 전통이 있는 나라다.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 전 문화재청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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