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바야흐로 스포츠의 계절이다. 긴 여정을 달려온 봄과 여름의 스포츠가 가을에 이르러 최고의 강자를 가리고 있고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겨울 스포츠가 그간 닦아온 기량을 겨루기 시작했다.
스포츠는 다른 분야에 비해 흥미를 자아낼 수 있는 많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스포츠는 공정한 규칙에 의해 지배된다. 반칙을 하게 되면 해당 선수와 팀은 벌칙을 받게 된다. 삶과 업무는 기나긴 호흡을 필요하지만 스포츠는 몇 시간 안에 승부가 결정 나게 돼 있다. 그 승부가 갈리기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은 사람을 긴장과 몰입을 하게 만든다. 정해진 시간 안에 누구에게도 기울지 않은 공정한 규칙에 따라 승부가 갈리니 스포츠의 세계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특히 챔피언을 가르는 시합을 보면 경기력이 아니라 실수에 의해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축구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하거나 야구에서 평범한 뜬공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한순간의 어이없는 플레이에 의해 두 팀 사이의 팽팽한 균형이 무너지며 승부의 추가 확 기울어진다. 이때 관중은 어이없는 실책을 범한 선수를 두고 야유를 퍼붓기도 하고 인터넷상에서 온갖 비방의 언어가 춤을 추기도 한다.
스포츠만큼이나 냉엄한 승부의 세계를 살아가는 영역이 있다. 바로 전쟁이다. 손자(孫子)가 자신의 책 서두에서 말했듯이 전쟁의 승패는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스포츠에서 전승이 불가능하듯이 전쟁에서 매번 이기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전쟁에서 승리만을 바란다면 어느 장수가 전쟁을 맡아서 지휘하려고 하겠는가.
전쟁에서 승리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당 제국 헌종(憲宗)은 오늘날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 것은 전쟁을 지휘하는 일에서 늘 있는 일이다(일승일부·一勝一負, 병가상사·兵家常事)."라는 말을 했다. 당시 헌종은 변방을 지키는 절도사들이 황제에게 도전하는 상황에 몰려 있었는데 패배를 두려워하면 소극적으로 수세를 할 수밖에 없고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수세를 공세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헌종은 패배의 책임 때문에 절도사와의 전쟁을 피하려고 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에서 꼭 이길 수만은 없다는 선언을 했던 것이다.
챔피언을 가르는 최후의 경기에서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실책으로 승부가 기울어지는 경우가 많다. 경기의 비중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긴장이 늘어나서 몸과 마음이 생각대로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고의로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승패의 압박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인간이기에 범할 수 있는 일이다. 이때 사람들이 실책을 범한 선수더러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상상할 수 없는 협박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선수에게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손에 땀을 쥐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마음을 졸이는 상황에서도 차분해 한 치의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에게 가능할지 몰라도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무조건 패배의 책임을 과도하게 묻는 풍토를 보이고 있다. 승패가 갈릴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모두가 이기기를 바란다면 그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불가능을 바라는 일이다. 가을 스포츠만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실패를 한 사람에게 따뜻한 박수와 격려를 보내는 것이 더 인간다운 사회가 아닐까.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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