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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州 "난민 거부"… 미국 '이슬라모포비아' 확산

오바마, 수용 강행에 반기… "클린턴 대세론 뒤집기 기회"

'파리 테러'의 여파로 미국 내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혐오증)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모스크(이슬람사원) 폐쇄, 종교전쟁 등 위험한 발언을 쏟아내며 무슬림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부채질하고 있다. 백인 경찰의 잇따른 비무장 흑인 사살 등으로 인종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가 종교갈등이라는 또 다른 화약고를 건드리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파리 테러 용의자 중 일부가 시리아 난민으로 가장해 침투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난민수용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2016회계연도에 시리아 난민 1만여명을 수용하겠다고 지난 9월 밝혔지만 터키 400만명, 독일 80만명 등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공화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테드 크루즈 텍사스 상원의원, 신경외과 의사 출신의 벤 카슨 등은 "박해받은 기독교인을 위한 피난처는 제공해야 하지만 테러리스트가 미국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며 "엄청난 실수"라고 반박했다.

미국의 상당수 주(州)들도 오바마 행정부의 난민수용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CNN에 따르면 미시간·앨라배마·텍사스 등 미 공화당이 장악한 26개 주는 물론 민주당이 집권한 뉴햄프셔 등 27개 주가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본토 내 50개 주의 절반이 넘는 것으로 이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의 '대세론'을 뒤엎을 기회로 보고 연일 반(反)무슬림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파리 테러를 자행한 수니파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가 '워싱턴DC 타격'을 공언한 가운데 일반 미국인들의 공포감을 활용해 표를 얻겠다는 것이다.



이날 뉴욕시가 테러 진압 특수경찰을 주요 지점에 배치했고 워싱턴DC도 주요 건물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는 등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또 미국 내 일부 총기판매점은 무슬림에 대한 판매를 거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날 "증오의 대화가 오가는 미국 내 모스크를 잘 감시해야 한다"며 집권할 경우 일부 모스크 폐쇄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 상원의원은 "우리는 모든 이슬람이 아닌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와 전쟁을 하고 있다"는 클린턴 전 장관의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을 물고 늘어졌다. 그는 전날 "나치와의 전쟁이 독일과의 전쟁이었던 것처럼 과격한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중간지대는 없다"며 "이는 문명의 충돌"이라고 비판했다. IS와의 전쟁을 사실상 중세시대의 '종교전쟁'에 비유한 것이다.

이슬람 공포증은 비교적 '관용의 문화'가 살아 있는 캐나다에도 상륙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서부 서스케처원주는 쥐스탱 트뤼도 총리에게 시리아 난민 수용 계획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테러 발생지인 유럽연합(EU)에서는 반이슬람 정서가 증폭되면서 극우정당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때문에 난민포용 정책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면서 역내 자유통행을 규정한 '솅겐조약'마저 위기에 처했다. 프랑스는 국경 전체를 봉쇄했고 인근 벨기에는 프랑스 국경에서의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핀란드·노르웨이 등 북유럽국가들도 국경통제와 이민자 관리 강화에 나섰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샤디 하르미드 연구원은 "반이슬람·반난민정서가 강해질수록 이들은 기존 사회와 겉돌면서 결국 과격행동에 가담할 것"이라며 "이슬람 혐오증은 IS의 손에 놀아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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