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의 신경전이 묘하다. 디지털미디어 혁신의 '투톱'이라 할 수 있는 양자의 다툼이 볼썽사납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NYT다. 지난 8월 '아마존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일터'라는 요지의 탐사보도를 통해 아마존을 공격했다. WP를 인수한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저스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려는 시도인 듯싶다. 보도 내용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존은 비인간적 기업이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돌보느라 야근을 못한 여직원은 상사로부터 '문제 사원' 평가를 받고 회사에서 쫓겨났고 쌍둥이를 유산한 여직원은 회사 측의 재촉에 못 이겨 수술 이튿날 곧바로 출장을 떠나야 했다. 베저스는 즉각 "만약 NYT기사가 사실이라면 나부터 아마존을 떠나겠다"고 반박했다. 더 나아가 아마존 측은 최근 'NYT가 여러분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라는 글을 통해 반격에 나섰다. 여기에 NYT가 재반박하며 양측의 갈등은 더욱 확대됐다.
NYT와 WP의 공방은 디지털미디어 혁신의 선두 다툼과 맞물려 있다. WP는 2013년 베저스가 인수한 뒤 단숨에 디지털 혁신의 강자로 떠올랐다. NYT또한 2014년 '디지털 퍼스트'를 표방한 혁신보고서를 통해 성공적인 혁신의 길을 닦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산업자본을 앞세운 WP와 언론자본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NYT는 지금 디지털 최강의 자리를 두고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다리 위에 마주 선 꼴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공 가도를 달리는 디지털 강자들이 왜 이토록 추한 싸움에 골몰하는 걸까. '생존'의 절박함 때문이리라. 인터넷 등장 이후 미국 신문산업에는 쇠락이 시작됐다. 디지털 혁명의 소용돌이에 로스앤젤레스타임스·시카고트리뷴·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 등 유력 일간지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한국 신문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신문사마다 닷컴 만들기 열풍이 불었지만 '디지털 혁신의 성공작'으로 평가 받는 올드 미디어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신문의 디지털 혁신은 왜 이토록 어려운가. 세 가지 장애물 탓이다. 첫째, 장애물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자세다.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 얘기처럼 말이다. 국내외 올드 미디어들은 제대로 된 디지털 혁신은 해보지도 않고 신흥 강자들의 혁신을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에서는 허핑턴포스트 등의 맹활약에 기존매체들은 "천박하다"고 조롱했고 국내에서도 피키캐스트 등의 약진에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디지털 혁신은 도외시한 채 말이다. 우화 속 여우가 "저 포도는 틀림없이 실거야"라고 자포자기를 합리화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영혼 없는 '미투(me too) 전략'도 큰 장애물이다. 혁신의 이유도 방향도 모르면서 남이 하니까 나도 하는 식으로 맹목적 시늉내기에 나서니 성공은 고사하고 실패 뒤의 상처가 너무 크다. 닷컴 열풍 때 우르르 쏠렸다 낭패를 보더니 이제는 저질 어뷰징까지 손을 뻗치며 스스로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언론이 부지기수다. 디지털 혁신에 대한 의지도 진정성도 없다면 그냥 가만히 있어라. 그편이 차라리 매체의 생존 기간을 연장하기에 더 유리하다.
가장 큰 디지털 혁신의 장애물은 '콜로세움 개혁'이다. 말로만 혁신을 외칠 뿐 팔짱 끼고 구경이나 하면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마치 콜로세움 관중석에 앉아 검투사의 경기를 구경하는 로마 시민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디지털 혁신은 몇몇 구성원에게 위임해서 달성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구경꾼은 장애가 될 뿐이다. 진정 모바일 중심의 미디어 세상이 도래했음을 자각한다면 구경만 말고 용기와 신념을 갖고 혁신에 몸소 참여하라. 다시 종교식 화법으로 풀어 말하자면 "너희가 디지털 혁신을 믿느냐? 그러면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지어다!"
/문성진 디지털미디어부장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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