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뉴욕의 한 부동산개발 회사와 쿠웨이트의 사모펀드는 합작 투자를 통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트위터 본사 인근 마켓스트리트의 낡은 빌딩을 사들이기로 해다. 입주자도 없이 텅 비었던 이 건물은 1년 반 만에 203개 객실 규모의 첨단 호텔로 변신해 런던의 미래형 호텔 체인 '요텔'(Yotel)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트위터와 하이테크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마켓스트리트의 가치를 눈 여겨 본 부동산 개발사 시냅스(Synapse)의 안목과 성장성 높은 고수익을 노린 오일 머니의 합작 투자는 1년 반 만에 대박을 터뜨렸다.
유가 급락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중동의 오일머니가 미국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다.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부동산 시장만큼 안정적인 고수익을 올릴 만한 투자처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동 경제는 그동안 고유가로 벌어들인 돈을 자국 내 안전 자산에 투자하면서 고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최근 알카에다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테러 위협 등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자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새로운 투자처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기 둔화 여파로 신흥국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상품 투자 수익률이 감소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냅스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부동산 투자에 나섰던 쿠웨이트 부동산투자사 아카라(Aqarat)는 투자 신세계를 찾아 나선 오일 머니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샌프란시스코 투자 프로젝트에 쏠쏠한 재미를 본 아카라는 시냅스 부동산과의 합작 투자 규모를 더 늘려 향후 2,500만 달러를 미국 부동산에 투자하기로 했다. 아카라와 시냅스는 현재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부동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또 다른 미국 신흥 성장지역을 물색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최근 쿠웨이트를 비롯해 중동 산유국들이 고수익 투자처를 찾아 미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며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았던 일부 중동 국가의 경우 처음으로 미국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로이터는 부동산 자문서비스업체 CBRE를 인용해 올해 중동 산유국의 해외 부동산 투자 규모가 최대 200억달러(약 23조원)에 이르며 이는 2013년에 비해 13% 이상 늘어난 규모라고 밝혔다. 해외 부동산 투자자금의 90%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오만 등 6개국에 몰려있다.
CBRE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동 오일머니의 공세를 가장 많이 받은 도시는 런던(28억달러)이었고 홍콩(24억달러)과 뉴욕(11억달러)이 그 뒤를 이었다. 투자 규모로만 보면 뉴욕은 런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CBRE는 뉴욕을 포함한 미국에 대한 중동 국가 투자 규모가 급증 추세라고 강조했다. 올 상반기 중동 오일머니의 전체 미국 부동산 투자 규모는 27억달러로 이미 지난해 전체 투자금액을 넘어섰다. 투자금은 뉴욕과 와싱턴 D.C., 애틀랜타, 마이애미 등에 몰리고 있다. 카타르 국부펀드인 카타르투자청은 지난 10월 뉴욕 맨해튼 웨스트 브룩필드 개발 프로젝트 지분 44%를 매입했다.
로이터는 중동 산유국의 미국 부동산 투자가 늘어난 배경으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 증가와 유가 급락에 따른 자국 투자 수익률 저하를 꼽았다. 유가 급락으로 중동 지역 경제가 침체에 시달리면서 자국에 투자했던 돈을 거둬들이는 대신 해외로 투자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중국의 경기 둔화 영향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휘청거리면서 금융자산 투자 수익률이 급감하자 기대 수익률이 높은 미국 부동산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지나치게 올라버린 영국 런던 부동산에 비해 미국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의 추가 상승폭이 남아있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로스앤젤레스 소재 부동산 투자사 에티카(Ethika Investments LLC)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오스틴 칸은 "과거에는 중동 투자자들이 런던이나 파리 등 중동과 비교적 가까운 지역 투자를 선호했지만 런던 등의 부동산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매력이 줄고 있다"며 최근 오일머니가 미국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두바이 CBRE의 알리 자헤드 이사는 "중동 산유국 왕족들이 이전에는 해외 투자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며 "시리아와 이라크의 과격한 테러그룹 출현이 중동 산유국 거대 투자 패밀리 그룹의 생각을 바꿔 놓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병문기자 hb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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