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갑질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국 통신칩 제조업체 퀄컴이 삼중고에 처했다. 삼성전자 등의 독자적인 칩 개발에 따른 시장잠식,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분사 요구에다 주요국의 반독점 조사 공세가 날로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부품이 아닌 전체 휴대폰 판매 대수에 대해 특허 로열티를 산정하는 퀄컴의 관행을 반독점으로 최종 판정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18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퀄컴 주가는 9.4% 급락한 48달러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만도 35%나 폭락하며 지난 2011년 10월 이후 4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주요국의 반독점 조사 등 연이은 악재에다 한국 공정위가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를 포착한 심사보고서를 퀄컴 측에 전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퀄컴이 한국 회사에 지나치게 높은 특허 수수료를 요구했고 불필요한 특허권까지 끼워 팔았다고 지적했다.
퀄컴 측은 "공정위 조사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고 심각한 법적 남용"이라며 "퀄컴과 다른 특허 소유자의 관행은 20년 가까이 유지됐고 이동통신 산업 성장에 기여해왔다"고 정면 반박했다. 하지만 시장의 분석은 다르다. 블룸버그는 "퀄컴이 세계 3대 고객 중 삼성·LG전자 등 두 곳이 위치한 한국에서 도전받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시장은 퀄컴 매출의 16%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특허료를 부품이 아닌 전체 휴대폰 판매수량대로 받는 퀄컴의 핵심사업 모델에 대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메스를 들이댔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사례는 퀄컴의 자사 특허료 산정을 합리화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규제가 확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주요국 반독점 당국은 퀄컴의 '약탈적 특허료' 관행에 적극적으로 본때를 보이기에 나선 상황이다. 7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퀄컴이 경쟁업체를 시장에서 퇴출하기 위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는지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올해 초 중국도 퀄컴이 자사 특허를 라이선스하지 않은 자국 기업에 칩 판매를 거부하자 반독점 조사를 진행해 10억달러의 과징금을 매겼다.
더구나 이달 들어 퀄컴은 중국 휴대폰 업체들과 새로운 특허료 계약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한달간 증발한 시가총액만도 200억달러에 이른다. 이달 초 퀄컴 측도 앞으로 매출과 수익이 시장 예상치를 밑돌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또 각국 규제당국의 파상 공세에 따라 특허 라이선스 사업에서 칩 부문을 분사하라는 주주들의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리서치 기관인 샌퍼드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래스건 애널리스트는 "한국 공정위와 퀄컴과 간 분쟁이 수년간 이어지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면서도 "퀄컴 라이선스 모델에 대한 '최후의 심판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투자가들의 불안감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 4월 주주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자나파트너스도 퀄컴이 칩 판매와 특허 라이선스 사업을 병행하는 바람에 삼성이 프로세스를 자체 개발하는 등 고객사와 분쟁이 커지고 연이은 반독점 조사에 직면했다면서 사업을 둘로 쪼개라고 요구했다. 퀄컴 매출에서는 무선송신용 칩 사업이 3분의2를 차지하지만 수익의 3분의2는 휴대폰 특허 라이선스에서 발생한다. /뉴욕=최형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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