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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재능과 인격

홍성균 <신한카드 사장>

신한은행 도쿄지점에 재직하던 시절의 일이다. 둘째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에 참관학습을 가게 됐는데 원생들이 뒤섞여 놀면서 연방 ‘미안해’ ‘죄송합니다’고 하던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외국여행을 할 때마다 식당이나 극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무례하게 구는 아이들을 엄하게 꾸짖는 부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회생활의 기본은 공동체 속에서 함께 생활하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자식이 공중예절을 무시해도 부모들은 못 본 채 넘겨버리기 십상이다. 영화나 TV, 인터넷을 봐도 온통 욕설이 난무한다. 의견이 다르면 상대가 누구건 거침없이 막말을 한다. 최소한의 체면도 예의도 없는 말과 글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선진국 문턱을 막 넘어가고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세계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문화에 결핍돼 있는 것은 ‘개인의 책임감’이 아닐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경쟁에서 이기는 법, 즉 점수를 더 따고 그때그때 유행하는 풍조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이기적인 재능인(才能人)이 될 것만을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 책임감이야말로 사회나 조직ㆍ가정ㆍ개인의 발전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즉 인격(人格)이 결핍된 아이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인격은 그 사회구성원의 문화적 역량에 의해 형성된다. 힘겨워하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줄 줄 아는 친절, 장애우에게 차례를 양보할 줄 아는 배려, 봉사활동을 위해 시간을 낼 줄 아는 헌신,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사과할 줄 아는 용기, 작은 일에도 늘 감사의 말을 건넬 줄 아는 겸손, 정직하고 약속을 지키며 책임질 줄 아는 성실함 같은 성숙한 시민적 덕목은 어린 시절부터 말과 행동 속에 체화돼야 비로소 생명력을 갖게 된다.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문화는 ‘무정형(無定刑)의 자연에 끊임없이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형성된다’고 했다. 이는 문화란 고정된 것이 아니고 항상 변하기 때문에 좋은 문화가 재생되려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혼돈(entropy)과의 갈등을 현명하게 조정(fine tuning)해 질서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유지 발전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이 상실되면 혼돈이 점점 커지면서 문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즉 무위(無爲)의 퇴행(退行)으로 가게 된다. 아름다운 사회는 존재하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 즉 인격적으로 성숙한 시민들이 많을 때 가능한 것이다. 세상은 재능 있는 사람을 좇는 것 같아도 결국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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