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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를 만나다] 뒤풀이… '19路 검객' 유창혁 9단
입력2010-09-20 16:50:32
수정
2010.09.20 16:50:32
"요즘엔 자주 초읽기에 몰려 역전패<br>자꾸 깜박… 나이는 어쩔수 없나봐요"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에요. 자꾸 깜박깜박합니다. 요즘 제가 진 바둑을 보면 70% 정도가 초읽기에 몰려 역전패한 거예요."
유창혁 9단의 인상은 예나 지금이나 고우영 화백이 그린 일지매 그대로였다. 여인으로 치면 단아한 양반집 아씨, 사내로 치면 외유내강형 선비. 모습은 세월을 잊은 듯 변함없어 보이는데 정작 그의 입에서는 나이 얘기부터 나왔다.
"옛날에는 창호(이창호 9단)와 같이 가면 사람들이 제가 동생인 줄 알았어요."
자기도 썰렁한 농담인줄 아는지 쑥스러운 표정으로 활짝 웃는데…이런, 눈웃음의 잔물결이 40대 중반이라는 것을 비로소 가르쳐준다.
"그래서 요즘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겁니까."
한칼을 들이대봤다. 그는 지난 2002년 LG배 세계기왕전 이후 세계대회 우승 소식이 없다. 국내 기전 역시 조용하다. 국내외에서 무관이다.
"나이 탓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요. 체력관리를 하면서 바둑만 열심히 둬도 쉽지 않은데 공사가 다망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그는 한국기원 상임이사다. 하는 일은 쉽게 얘기해 해결사다. 후배들은 차려진 밥상(기전)에서 열심히 성적만 내면 되지만 그는 그 밥상을 차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얼마 전에도 기전 2개가 삐걱댔지요. 유 사범님이 나서 다독이니까 겨우 문제가 풀렸어요."
옆자리에 있던 한국기원 관계자가 한마디 거든다.
무슨 문제인지는 보지 않아도 훤하다. 바둑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니 기전을 주최하는 기업들은 들인 돈에 비해 생색(홍보효과)이 나지 않아 섭섭할 것이다. 결국 돈 문제다.
"요즘에는 아이건 부모건 판단이 빠른 것 같아요. 솔직히 바둑이라는 게 세계 1등을 해도 1년에 10억원 정도밖에 못 벌지요. 골프는 PGA대회에서 한번만 우승해도 10억원이잖아요. 바둑에 대한 관심이 분명히 줄었어요."
그는 바둑이 전처럼 국민들에게 어필하려면 국내 기사들의 세계대회 우승이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최근 삼성화재배가 점심시간을 없앤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이건 또 무슨 얘기지? 세계대회 우승과 점심시간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까.
"세계대회의 흐름을 보면 대개 점심시간이 있는 대회에서는 중국 기사들이 우승하고 없는 대회에서는 우리 기사들이 우승합니다. 중국 기사들은 점심시간에 주위에서 훈수를 받는데 우리가 그랬다가는 영구제명감이지요. 대국시간이 짧은 시합일수록 형세판단 등의 훈수 한마디가 큰 영향을 미칩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중국 기사들이 비신사적이라고 비난을 해야 할 사안일까? 그런 걸 방지하려면 대국시간을 좀 더 줄여야 되나?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중국과 우리의 문화가 다른 거지요. 누구를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국제기전은 대국시간이 3시간 정도 주어지는데 이것도 길다는 얘기가 많이 있지요. 그런데 그렇게 대국시간이 짧아지다 보니 승부가 실수로 결정되는 경우가 참 많아졌어요. TV중계 등 현실을 고려할 때는 대국시간을 줄이는 게 대세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하루 정도의 대국시간을 갖는 정통 기전이 한 개쯤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말도 시원시원 재미있게 잘하고 술도 받는 대로 술술 잘 마셨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흐트러짐 없이 드러나지 않는 카리스마로 좌중의 분위기를 끌어갔다. 그와 함께 한 저녁자리는 편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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