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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5월 16일] 한국의 '토르케마다'

그의 이름은 ‘공포’ 자체였다. 그의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는 ‘고문’과 ‘화형(火刑)’의 상징이었다. 그가 ‘이단’이라고 낙인찍는 순간 지목된 사람의 삶은 끝나고 말았다. 그는 바로 스페인 최초의 종교재판소장 ‘토르케마다(Torquemada)’다. 1483년 종교재판소장으로 취임한 후 18년 동안 무려 11만명을 ‘이단자’로 고발하고 그 중 1만여명을 화형대로 보냈다고 전해진다. 유태인들은 히틀러와 토르케마다를 잊지 못할 악인으로 꼽는다. 토르케마다가 스페인에서 유태인의 씨를 말리는 수단으로 종교재판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유태인들만 어처구니없는 희생을 당한 게 아니다. 너무 똑똑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수학자 발메스다. 그가 “4차방정식의 해(解)를 찾아냈다”고 주장하자 즉시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토르케마다가 제시한 죄목이 가관이었다. 그는 “아주 어려운 방정식의 해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찾아낼 수 없다는 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일갈했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폭력의 모태는 절대권력이었다. 중세 가톨릭과 왕가는 정교(政敎) 복합체를 구성,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렀다. 이단은 교회는 물론 세속에서도 범죄로 취급됐다. 따라서 교회나 왕에 대한 그 어떤 비판이나 도전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유로운 비판이나 여론이 없다 보니 성직자나 왕의 말이 곧 법으로 통했다. 중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꺾어버린 가장 불행한 시기였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기로 결정한 후 광우병 우려가 온갖 괴담을 낳았다. 인터넷 강국을 입증이라도 하듯 괴담의 확산 속도도 눈부시게 빨랐다. 그야말로 ‘네트워크 효과’를 실감하게 했다. 괴담의 전파 속도에 비해 해명이나 반론은 더디기만 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신속히 제시되지 못하는 바람에 불안과 공포가 우리를 엄습했다. 일부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닌 것도 있었지만 터무니없는 유언비어가 많았다. 굳이 과학 지식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상식을 갖고 있다면 믿지 못할 내용이 상당수였다. 토르케마다가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멀쩡한 사람을 이단으로 지목하듯 터무니없는 주장도 난무했다. 지금은 지식정보 사회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나오면 곧 과학적 반론이 제시된다. 터무니없는 의견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신속히 반론이 나오지 않거나 반론 주체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평소라면 무시하고 넘어갈 ‘헛소리’조차 활개를 친다. 걷잡을 수 없는 아노미 현상이 벌어짐은 물론이다. 더욱이 주제 자체가 우리의 먹거리, 바로 건강 문제였다. 당연히 합리적인 우려도 제기됐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괴담’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억지도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잘못이 속속 드러나자 역풍은 더욱 거세졌다. 휘발성이 큰 주제임에도 정부의 대응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쇠고기시장 개방 협상을 졸속 처리해놓고도 대충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 내용을 엉뚱하게 번역한 사실이 밝혀져 ‘영어몰입 교육이 필요하다’는 힐난도 들어야 했다. 이러니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신뢰는 정책, 나아가 정부의 성공 여부를 가름한다. 국민의 믿음을 받는 정부는 성공하지만 그렇지 못한 정부는 실패하고 만다. 신뢰를 얻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 ‘얼리버드(early bird)’만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최고의 수단은 ‘투명성’이다. 비난이 두려워 사실을 감추면 불신만 쌓인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을 친절하게 설득하는 모습을 보이면 신뢰는 자연스레 형성된다. 신뢰가 쌓이면 ‘토르케마다’도 당연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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