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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10월 25일] 천안삼거리 흥타령

지난해부터 거의 달마다 충남 연기군 관정약수터를 찾고 있다. 사료에 따르면 세종대왕이 이 약수로 안질 치료에 효험을 봤다고 한다. 그런데 약수터가 행정구역으로는 연기군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독립기념관 건너편 쪽이라 경부고속도로 천안 나들목에서 빠져나가 천안삼거리를 지나서 들어간다. 무성한 가지들이 휘휘 늘어진 능수버들로 둘러싸인 천안삼거리공원 앞을 지날 때마다 이곳에 서린 재미있는 전설을 떠올리게 된다. 천안의 시목(市木)인 능수버들은 가지가 적자색인 수양버들과 달리 황록색이다. 능수란 이름은 흥타령에 얽힌 능소의 전설에서 비롯됐다. 먼 옛날 충청도 어느 고을에 유봉서라는 홀아비와 능소라는 딸이 살고 있었다. 아비가 수자리(변경수비)에 나가며 더는 데리고 갈 형편이 못 되기에 능소를 삼거리 주막에 맡기고 갔다. 딸과 헤어지며 수자리를 마치는 대로 바로 돌아오마 하고는 약속의 표시로 버들가지 하나를 길섶에 꽂았다. 세월이 흘러서 유봉서가 천안삼거리로 돌아와보니 버들가지가 어느새 튼실한 나무로 자라나 치렁치렁한 가지들이 삼단처럼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버드나무 밑에는 다 큰 처녀로 자라난 능소가 기다리고 있었다. 재회의 기쁨에 못이긴 부녀는 얼싸안고 흥타령을 부르며 돌아갔다. 그 뒤부터 이 나무를 능수버들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전라도 고부 땅의 박현수라는 젊은 선비가 과거 길에 올랐다가 삼거리 주막에서 묵게 됐는데 옆방에서 울려오는 가야금 소리에 심사가 어지러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참다못해 찾아가 보니 능소라는 이름의 아리따운 기생이었다. 첫눈에 반한 두 청춘남녀는 그날 밤 한 이불 속에서 만리장성을 쌓았다. 날이 새자 박현수는 춘향에게 이 도령이 했듯 뒷날을 약속하고 한양 길을 짚어갔다. 그리고 보란 듯이 과거에 급제해 돌아왔다. 능소의 신명을 그 누가 말릴손가! 능소의 입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흥흥 흥타령이 흘러나왔다. - 천안 삼거리 흥 능수나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에루화 좋구나 흥 성화가 났구나 흥~ 흥… - 그렇게 생겨나 퍼져나간 흥타령은 온 나라 서민이 즐겨 부르는 민요가 됐다. 전설과 유래야 어느 것이 옳고 그르든 큰 문제가 되랴. 출세한 양반이 하룻밤 짓밟은 주막거리 작부를 다시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믿거나 말거나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서민의 아픔과 설움을 응어리나 앙금으로 남기지 않고 신명나는 흥(興)으로 승화시킨 데에 흥타령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이 또한 서민의 멋이요 슬기가 아니랴. 천안은 예부터 기호(畿湖)와 양남(兩南)을 잇는 교통의 요충으로 길가에 주막과 마방(馬房)이 즐비했다. 떡 맛은 삼남에서도 쳐주고 장국밥은 한양에서도 알아줬다. 천안명물 호두과자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철도행상을 통해 만주까지 건너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천안삼거리의 첫 번째 갈래는 서울로 통하는 길이요, 또 하나는 도리티고개를 넘고 공주를 거쳐 논산ㆍ강경ㆍ전주ㆍ광주로 빠지는 길이요, 또 한 갈래는 병천을 거치고 진천을 지나 문경새재를 넘어 상주로 통하거나 청주ㆍ보은ㆍ영동ㆍ김천을 거쳐 대구ㆍ경주ㆍ동래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삼남으로 내려가거나 삼남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많은 길손이 이곳 천안삼거리에서 머물며 여독을 풀었다. 이 길로는 정승 판서도 지나가고 장돌뱅이 각설이패도 지나갔다. 과거보러 가는 선비도 있었고 하룻밤 뜨내기사랑을 파는 주막각시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충청ㆍ전라ㆍ경상ㆍ삼남의 갖가지 사투리가 뒤섞여 돌아가며 온갖 애환을 빚어내던 천안삼거리도 이제는 능소의 전설 서린 삼거리공원만 남았을 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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