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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보졸레 누보 박영선 박영선 11월 셋째주 목요일은 보졸레 지방에서 나오는 햇와인을 의미하는 보졸레누보의 세계 동시판매 개시일이다. 우리는 보졸레누보 이벤트에서 위기에 처한 한국농업의 활로를 찾는 혜안이 필요하다. 와인종주국으로 꼽히는 프랑스는 ‘보르도’ ‘샹파뉴’ 등 생산지역별로 품질관리를 한다. 이는 흔히 AOC법이라고 불리는 원산지표기법에 따른 것이다. 생산지별로 와인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대한 심사기준을 만들고 이를 준수한 와인에만 지역명 표기를 허용하는 이 법이야말로 프랑스를 와인종주국의 자리에 올려놓은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베가 시실리아’ ‘핑구스’처럼 기라성 같은 와인을 생산하는 스페인의 와인생산 역사는 프랑스에 비해 결코 짧지 않다. 그럼에도 프랑스가 와인종주국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AOC법을 비롯한 엄격한 품질관리 규제 때문이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러한 규제들이 생산자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생산자 스스로가 평판을 유지하고 명성을 얻기 위해 엄격한 품질관리를 법제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실정은 어떠한가. 국내에서 유통되는 잣은 대부분이 가평잣이라는 이름을 걸고 판매된다. 심지어 중국산까지도 가평잣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쌀 관련 법규는 이천의 정미소에서 가공하면 이천쌀로 둔갑하는 것을 용인하는 실정이다. 처음에는 겉절이만 먹던 외국인이 김치맛을 들이면 진한 젓갈맛의 남도 김치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로 와인 인구가 늘고 취향도 다양해지면 보졸레누보의 인기가 시들해진다. 올해 보졸레누보 예약 주문량이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와인인구가 늘었다는 반증이다. 이처럼 보졸레누보는 그 맛보다 그해 첫 수확을 마신다는 기쁨을 즐기는 것이다. 보졸레 지방 생산자들은 그해 수확된 포도로 만든 와인 중 최초로 마실 수 있는 와인이라는 강점을 부각시켜 전세계 동시판매라는 이벤트를 통해 보졸레누보를 세계적 상품으로 만들었다. 엄격한 품질관리,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마케팅이 어우러질 때 우리 농업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평판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가꾸고 키워가는 것이다. 또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정부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부수적 문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이 진리다. 입력시간 : 2004-11-1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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