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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삼일절, 이른 봄을 맞으러 지리산 천왕봉(天王峰)에 올랐다. 우리나라 산 중 꽤 높은 정상의 봉우리를 두고 천왕봉이라 일컫는데 그중에서도 금강산·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알려진 지리산의 천왕봉(1,915m)이 가장 유명하다.
신라 5악 중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愚者)도 이곳에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智者)이 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지리산(智異山)은 백두산의 맥이 반도를 타고 내려와 이곳까지 이어졌다는 뜻에서 두류산(頭流山)이라 부르기도 하고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높은 스님의 처소를 가리키는 방장의 깊은 의미를 빌려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한다.
민족의 기상이 시작된 지리산 천왕봉에 처음 오른 것은 철없는 대학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오로지 젊은 객기로 뱀사골에서 노고단을 거쳐 천왕봉까지 거침없이 오르며 지리산에서만 3일을 살았다. 두 번째는 40대 불혹의 나이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산행이었다. 백무동에서 장터목산장을 거쳐 천왕봉을 찍고 중산리행 하산을 했는데 걷고 또 걸으며 가슴에 묻어뒀던 고민의 답을 묻고 또 찾았다. 나는 무엇인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월급쟁이 인생을 계속해야 하는가,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하나. 길고 긴 산행 시간 동안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으나 결국 답을 구하지 못했다.
오랜 물음의 답을 찾길 바라며 마침내 세 번째 천왕봉 정복을 계획했다. 어느새 아들딸은 다들 제 짝을 찾아 떠났고 필자는 대표이사로 직장생활의 정점에 올라섰다. 천왕봉에 올라 과연 이만하면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스스로 위로와 칭찬을 반복하며 인생에 있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지리산 정상을 세 번째로 안을 생각이었다. 중산리, 천왕봉, 장터목산장을 거쳐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정하고 단단히 준비했다.
첫째 날 오후, 중산리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음 날 서둘러 아침을 깨웠고 다시 천왕봉을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역시 지리산은 웅장하고 신비로워 정상으로 가는 곳곳에서 발길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게끔 했다. 까마득한 정상을 바라보니 가슴 깊이 뭉클함이 느껴졌다. 법계사를 지나 개선문에 도착하니 내가 살아온 인생이 조금은 보이는 듯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숨차게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왕봉으로 가는 마지막 고비 깔딱고개에 이르자 산세가 점점 험해져 자칫하면 저 끝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천왕봉은 나에게 남은 인생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과 겸손한 태도로 끝까지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있었다.
정상은 변화무쌍했다. 눈은 한겨울처럼 쌓였고 세찬 바람은 나를 무섭게 흔들어댔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정상표지석을 안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2014년 천왕봉은 내 발 아래에 있다!" 산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 했던가. 인생의 길이 험난하고 힘들지라도 인내하며 고비를 극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오롯이 정상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을 위해 정상이라는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그곳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지만 모든 이가 정상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 어느 순간 힘들어 넘어져 포기하거나 다른 길로 빠지기도 하지만 정상에 다다르지 못했다고 해서 그 걸음이 허튼 것은 아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자신이 목표를 세우고 정상까지 가는 그 행위 자체다. 산의 꼭대기만이 산이 아니듯 과정 자체가 정상을 향한 목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혹여 마음이 바뀌어 네 번째 도전을 하고 싶어진다면 더 높은 산을 향해 과감히 오를 것이다. 그리고 더 큰 인생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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