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묵은 곡식이 다 떨어지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 농가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빗댄 말이다. 현재 국내 금융투자업계가 직면한 상황이 딱 이렇다.
밖으로는 글로벌 경기침체라는 악재가 여전하고 내부에서는 거래대금 감소에 시달리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증권사들이 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증시침체→투자자 이탈→거래대금 감소'라는 악순환만 되풀이되고 있다.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증권가의 이 같은 시름은 단순히 엄살로만 보이지 않는다. 증시 관련 각종 데이터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2월 결산법인 1,728개사의 지난해 실질주주는 1,562만명, 중복 투자자를 제외한 순투자자는 472만명으로 2011년(482만명)보다 2.1%나 줄었다. 지난해 3ㆍ4분기까지 거대대금도 1년 전보다 30.4%나 줄어든 1,193조원을 기록했다.
거래 수수료가 주요 수익원인 국내 증권사들의 순이익 규모 역시 이 기간 7,877억원으로 2011년보다 55.0%(9,621억원)나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혹한의 금융투자시장에 봄 바람을 몰고 올 해법이 마땅히 없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거래 수수료 등에 국한된 증권사 수익구조라는 고질병을 치료하고자 한국형 투자은행(IB) 활성화와 대체거래소(ATS) 설립 등 자본시장법 개정에 나섰지만 정치적 논리에 밀려 여전히 국회에서 잠만 자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야가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았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국회 문턱을 넘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렇다 할 희망의 불씨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예로부터 농가(금융투자업계)에서 춘궁기를 넘기 위해 바라는 것은 하루빨리 보리(자본시장법 개정안)가 여무느냐(국회 통과)다.
새 정부가 출범하며 희망의 씨앗이 자랄 수 있는 시기를 맞아 국내 정치권에서 꼭 한번 곱씹어봐야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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