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대형 투자은행(IB)들이 '태자당(중국 고위공직자의 자제들)'을 고용해 중국 대형기업의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함으로써 주간사 업무를 따내는 등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미국 규제당국은 JP모건에 이어 월가 IB 전반에 걸쳐 이러한 행위들이 이뤄졌는지 조사에 나섰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과거 굵직굵직한 중국 기업의 IPO 때 주간사로 선정된 대다수의 월가 IB들은 태자당 관계자를 휘하에 두고 있었다. 지난 2006년 220억달러 규모의 중국공상은행(ICBC)의 홍콩 증시 IPO 주간사로 선정돼 막대한 수익을 올린 메릴린치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었던 우방궈의 사위 윌슨 펑을 고용하고 있었다. 메릴린치의 한 관계자는 펑이 ICBC IPO 업무에 집중 투입됐다고 WSJ에 전했다.
펑은 12억4,000만달러 규모의 에어차이나 IPO와 5억달러 규모의 둥펑자동차 IPO 주간사 입찰이 진행되던 2004년부터 메릴린치에 합류했으며 그때부터 메릴린치의 중국 IPO 주간사 입찰에서 자문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릴린치가 ICBC 주간사로 선정된 이듬해인 2007년 평은 중국영업 부문 회장에 올랐으며 1년 후 회사를 떠나 현재 광둥핵전력애너티투자펀드 회장으로 있다.
2010년 220억달러 규모인 중국농업은행의 홍콩 및 상하이 증시 IPO에서 주간사로 선정된 골드만삭스 역시 왕치산 중앙기율위원회 서기와 관계가 있는 홍닝을 직원으로 두고 있었다. 홍은 2005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했으며 농업은행 IPO 당시 중요한 역할을 해 고위층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씨티그룹 역시 2003년 35억달러 규모의 중국생명보험 IPO 주간사로 선정될 당시 자오쯔양 전 중국 총리의 며느리 마거릿 렌을 고용하고 있었다. 호주의 맥쿼리그룹 또한 각각 57억달러, 16억달러 규모의 중국철도건설공사ㆍ중국남방기관 IPO 주간사로 선정될 당시 전 철도부 장관의 사위인 레이먼드 선을 채용한 상태였다.
현재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는 JP모건에 겨눴던 사정의 칼날을 월가 전반으로 넓히고 있다. 앞서 법무부와 SEC는 JP모건이 중국 최대 국영투자그룹 광다그룹의 탕상?? 회장의 아들 탕샤오닝과 장슈광 전 철도부 운수국장의 딸 장시시를 채용한 후 IPO 주간사로 선정되는 등 부당이득을 챙긴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사정당국은 자국 기업이 해외영업시 뇌물을 주고 부당이득을 챙겼을 경우 해외부패방지법에 근거해 이들을 처벌할 수 있다. 또한 규제당국은 수사의 범위를 중국을 넘어 전세계 영업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WSJ가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만약 미 규제당국이 IB의 정확한 부정행위를 포착하고 이들을 기소할 경우 미국 국내는 물론 중국 정치권까지 메가톤급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관련해 여전히 막대한 벌금을 내고 있는 대형 IB들은 추가로 돈을 물어내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부패와의 전쟁을 강조하는 가운데 이 같은 비위가 공식화할 경우 현재 군으로까지 퍼진 부정부패 척결의 칼바람이 더욱 거세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으로 규제당국의 범죄행위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통상 은행들은 해외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현지 물정에 밝은 인물을 고용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규제당국이 이러한 고용과 부패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윌리엄 맥거번 전 SEC 직원은 "이런 사안의 경우 단순히 월가 IB가 중국 관료 자제를 고용하고 그때 IPO가 이뤄졌다는 정황 이상의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범죄가 입증된다"며 "규제당국이 수많은 내부 e메일과 거래 등을 뒤지겠지만 부패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