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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선진경제 초석 놓기
입력2007-01-03 16:41:38
수정
2007.01.03 16:41:38
지난 90년대 초 미국에서 ‘생산성 역설’이라는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정보화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는데도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진 현상을 이렇게 불렀다.
내용은 다르지만 이 같은 역설은 한국에도 유효할 것 같다. 개발연대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 사람들은 일중독자(workholic)라는 평을 많이 들었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앞둔 지금도 한국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산다. 주5일제가 시행됐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근로시간이 가장 긴 나라에 속한다.
선진국에서는 대개 해가 저물면 사무실이건 음식점이건 문을 닫고 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음식점을 비롯해 본격적인 야간영업을 시작하는 업종이 많다. 야간경제 규모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이런 특수성을 감안할 때 30%에 이르는 자영업의 고용 비중이 결코 높은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거의 병적이라 할 정도로 교육열도 높다.
소득의 8% 가까이를 사교육에 쏟아붓고 연간 3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돈을 해외유학비로 아낌없이 쓴다. 잘 살려는 욕구도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강하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주거지를 옮겨다니는 불편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동산 투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부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동안 부동산 불패신화가 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한국특유의 ‘생산성 역설’
이쯤에서 자연스레 한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처럼 열심히 사는데도 왜 경제는 활력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늘상 경제위기설에 시달리고 경쟁력이 있는 부문보다 경쟁력이 없는 부문이 휠씬 더 많다.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론보다 비관론이 지배적이다. 개인들만 열심인 것도 아니다. 과거 개발연대에 비해 기업의 재무구조와 수익성도 크게 개선됐고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거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을 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경영기법은 거의 다 들여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 부문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정부가 너무 의욕적이고 일을 너무 벌려 걱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개혁피로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오랫동안 혁신과 개혁이 강조돼왔다.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성과만 해도 엄청나 보인다.
놀라운 것은 각 부문이 극성스럽다는 표현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인데도 우리나라의 생산성이 미국의 3분1밖에 안된다는 사실이다. 자본장비율이나 기술력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생산성 격차가 지나치게 크다. 결국 부가가치 창출이나 생산성을 높이는 것과는 무관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수준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부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생산성 부문에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다 보니 평균적인 생산성이 형편없이 뒤질 수밖에 없다.
경쟁력 약화의 비밀도 여기에 숨어 있다. 생산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자본장비율과 기술수준이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자본과 기술의 역할이 그렇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도나 법규, 의식구조와 사고방식. 정부의 기능과 역활과 같은 그 사회 특유의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후진적 시스템 혁신 서둘러야
경쟁력을 높이고 선진국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 이제 우리 경제가 작동방식을 규정하는 틀 자체, 시스템을 혁신하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가령 농업시대 또는 굴뚝산업시대에 만들어진 정부조직과 시스템으로는 지식기반경제를 꽃피우기 어렵다.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잠겨 있는 자본과 노동 같은 생산요소가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과감하게 칸막이를 허물어야 한다.
제도격차(stock gap)의 해소가 시급하다. 작게는 규제완화일 수도 있고 크게는 정부조직 개편일 수도 있다. 민간의 창의를 가로막고 경쟁을 저해하는 장벽을 과감하게 허무는 일도 중요하다. 대표적인 마이너스섬 게임인 부동산 투기경쟁, 과외경쟁 등에 탕진되는 사회적 에너지만 생산적인 부문으로 돌려도 우리 경제는 휠씬 건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개혁은 정치적 부담을 두려워해서는 불가능하다. 대선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과연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저생산성의 틀을 과감하게 허물고 선진경제의 초석을 놓을 지도자가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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