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울주에서부터 밀양을 거쳐 창녕에 이르는 90km여 구간에 송전 철탑 162기가 설치, 그 중 69기가 밀양 구간 39km에 들어서는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이 승인된 때는 2007년 11월이었다.
이듬해 밀양 구간의 공사가 시작되자 밀양 주민들은 송전선로 백지화를 요구해 공사는 재개와 중단을 반복했다. 주민들은 송전탑 주변 전자파, 초고압 송전선의 소음, 흉물스러운 송전탑으로 인한 혐오지역화, 또 이로 인한 토지가격 하락 등의 피해를 주장했고 탈핵운동을 위시한 환경운동적 반대가 함께 일어났다. 밀양 송전선 분쟁으로 서문을 여는 이 책은 피해에 대한 '인권적 해석'으로 접근해 재산권,주민참여권,신체의 자유 등 인권 침해의 방지와 함께 사업주체인 한국전력공사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법적·사회적 제재 등으로 해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독특한 접근법은 바로 기업인권(business and human rights)적 접근이다. 기업이 인권을 침해한 경우 그에 대해 직접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기업과 인권에 대한 문제는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로열 더체 셸의 아프리카 니제르 삼각주 석유채굴과 관련한 현재 분쟁과 환경피해 사례가 있는가 하면, 인도 보팔의 유니온 카바이드 공장에서 일어난 유독가스 누출 사고로 인한 인명 살상 피해, 파키스탄의 나이키 축구공 제조공장을 비롯한 제3세계 저개발국의 아동고용과 노동 착취 등도 있다. 기업 다국적화로 이같은 분쟁이 세계적 문제로 부상하자 유엔이 나섰다. 2005년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저자인 존 러기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교수에게 기업과 인권 의제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킬 통로를 열어줄 것을 부탁했다. 책은 이후 6년간 펼친 저자의 활동을 기반으로 어떻게 기업과 인권문제를 풀어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국가의 인권보호(protect) 의무 △기업의 인권존중(respect) 책임 △인권침해 구제(remedy)에의 접근 등 3대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에 '인권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라는 실천도구를 제안하며 기업활동이 지구화된 이 시대에 인권 담론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가 정리한 개념과 실행지침에 관한 문건은 2008년과 2011년 각각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승인, 채택돼 기업과 인권에 관한 유엔의 기본 규범으로 확정됐다. 다국적 기업뿐 아니라 기업 일반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포괄적 인권보호' 기준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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