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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93> 결혼의 조건

하나-외환 공식 통합식 하루전날인 8월31일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건물에 KEB하나은행 통합 간판을 걸고 있다. /이호재기자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는 어른들의 ‘클리셰’(상투어)가 있다. 남녀끼리만 좋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고들 한다. 집안 간에도 어느 정도 교감이 필요하고 ‘수준’이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 것만 봐도 결혼이 참 어려운 일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필자의 지인인 어느 아동가족학 전문 연구자는 ‘부부끼리도 사회생활’이라는 말을 했다. 부부는 무촌이라고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미묘한 감정을 잘 관리해야 하고 예의를 다 해야만 원만한 관계 유지가 가능하다는 뜻이란다. 결혼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 이후의 사랑은 더 어려운 문제인 것만 같다.

회사끼리도 결혼 비슷한 걸 한다. 바로 인수합병(M&A)이다. 작년과 올해 들어 굵직한 합병이 다수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과 카카오의 전격 합병 소식에 이어 조금 결은 다르지만 삼성물산의 제일모직 합병, 그리고 올 하반기 들어 최대 규모의 M&A가 될 것으로 보이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간의 합병이 그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업의 본질 속에서 살아왔던 기업들이 갑자기 살림을 합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인수자를 일종의 점령군으로 바라보고 자신들을 저항세력으로 결집하는 피인수자들의 움직임은 진정한 문화 통합에 걸림돌이 된다. 체육대회, 회식, 장기자랑 같은 것을 백날 해봐야 마음 속의 복잡한 정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된 합병이 완성될 리 없다. 그 때문일까. 넥슨과 NC 소프트처럼 ‘합병 직전’의 단계에 이르렀던 공동사업-제휴 관계는 올 말 완벽하게 청산된다고 한다. 넥슨은 NC소프트에 지분을 다시 매각하면서 사실상 게임산업에서 최대 규모의 합병 프로젝트가 될 뻔했던 관계를 정리하게 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결국 조직 내에서 발생한 일종의 이질감을 극복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이러한 우려 때문일까. 다음카카오는 아예 ‘카카오’로 문패를 바꿔 달기로 했단다.

합병은 어렵다. 정부의 인가를 받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그 이후의 자금 조달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투자은행이나 컨설팅 회사를 고용해 합병 시너지가 재무적으로 얼마나 된다고 계산하고 언론에 노출도 시키지만 어디 세상일이 원하는 대로만 돌아가나. 재무적으로는 효과가 나더라도 실질적인 조직 문화 차원에서는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있고 막상 저질러 놓고 보니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꽤 많다.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손해가 아니다. 장밋빛 미래만 꿈꾸고 살림을 합쳤는데 ‘원수보다 못한 관계’로 판명 나는 건 사람이나 기업이나 종종 발생하는 일인 셈이다. 좀 더 알아보는 탐색 기간을 거치고, 더 나아가서 반복적으로 신뢰를 쌓아도 모자랄 판에 급하게 가정을 꾸리게 되면 진통이 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이토록 인수합병이 녹록지 않은 일인데, 9월 1일 출범한 KEB하나은행만큼은 새로운 합병 모델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이 기자의 바람이다. 두 은행 모두 저력이 있는 조직이었지만 금융산업에서 강호(强豪)라고 불리기는 어려웠던 게 현실이고 그래서 살림을 합치기로 결정했다. 더욱이 하나은행 측은 자산관리, 외환은행 측은 기업금융에 나름의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한 곳은 신중한 조직, 다른 곳은 발 빠르고 행동력 있는 조직이라는 견해도 일반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기자는 둘 간의 ‘완벽한 결혼’을 위해서는 철두철미하고 과단성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KEB하나은행의 새로운 사령탑의 향후 행보를 주시해볼까 한다. 기존 하나은행은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은행’이라는 기치를 내걸었었다. 문화는 물처럼 흐르는 것이요,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김구 선생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이제 강한 인연이 된 두 기업이 ‘문화의 힘’으로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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