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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때 무소속으로 국회 입성… 여야 오가며 험난한 정치역정
노무현 탄핵돌풍에 낙선 경험
높은 친화력·탈권위가 강점… 친박·비박 두루 원만한 관계
원유철 신임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는 항상 최연소 도의원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29세에 경기도의회 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최연소 도의원에서 시작해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까지 오른 셈이다.
원 원내대표는 고려대 재학 시절 당시 김영삼 총재를 찾아가 대학생 조직을 만들어보겠다고 나섰다. 현실정치에 발을 디딘 첫 계기였다.
대학졸업 후 잠시 일반기업에 근무했으나 1991년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평택갑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음에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원 원내대표는 공천에서 떨어졌지만 신한국당의 김영광 후보(득표율 19%), 자민련의 조성진 후보(19%)를 압도하는 득표율(40%)로 당선됐다.
이후 험난한 정치역정이 이어졌다. 원 원내대표는 15대 당선 후 신한국당에 입당해 부대변인을 맡았다. 하지만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아닌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면서 이인제 후보를 따라 신한국당에서 탈당해 이인제 후보가 주도한 국민신당에 입당했다. 이후 국민신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해 새천년민주당이 되면서 원 의원도 새천년민주당 소속이 됐다. 원 원내대표가 한나라당에 복귀한 것은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면서다.
이 같은 정치이력 때문에 한때 '철새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7대 총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열풍과 함께 낙선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18대 총선에서 무난히 당선된 뒤 19대에서는 60%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원 의원이 (17대에 낙선하면서) 징검다리 4선(15·16·18·19대)이라 그런지 4선 의원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당내 여러 의원들과 친분이 깊은 편"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원 의원이 괜히 4선을 한 게 아니다. 의원회관 목욕탕에서 만났는데 나를 사우나실로 데려가더니 길게 이야기를 나누더라"고 그의 친화력을 높이 샀다.
이 같은 품성 때문에 원 의원은 계파상으로는 비박계로 분류되나 계파색이 옅어 친박계 의원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정책과 관련해서는 외교·국방 분야에 조예가 깊다. 18대 국회 재입성에 성공하고 난 뒤 국방위원장을 역임했다. 재외국민 선거에서 우편 투표를 허용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 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의 상당수는 외교·국방 분야다.
한편 14일 원 의원은 원내대표로 추대된 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내 화합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원 원내대표는 "2010년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당위원장을 할 때 친이·친박은 없고 친한나라당밖에 없다고 주장했었다"면서 "계파 이익을 내세우거나 정파적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며 당내 화합을 강조했다.
△1962년 경기 평택 △수성고, 고려대 철학과·정치외교학과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 △경기도의회 의원 △제15·16·18·19대 국회의원 △신한국당 부대변인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경기도당위원장 △경기도 정무부지사 △18대 국회 국방위원장 △19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국회 지방자치발전특별위원장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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