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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 신의 자리와 정치의 함정

일전에 우연히 TV에서 ‘더 바디(The Body)’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두 명의 남녀 고고학자가 이스라엘에서 오랜 연구 끝에 상당히 의미 있는 유해를 발견한다. 그런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발굴한 유해의 주인공이 예수라는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소문이 퍼지자 바티칸 교황청은 물론 타 종교지도자들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심지어 그 ‘바디’를 차지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단체들이 나타나 혈투를 벌이기까지 한다. 결국 그 ‘바디’를 차지하기 어렵게 되자 급기야는 외경스럽게도 폭파해 버린다. 그리고는 그 폭파한 사람이 한마디를 남긴다. ‘정치에는 신도 있을 자리가 없다’ 한나라당의 오랜 경선 레이스가 드디어 이명박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경선이 다가오면서 후보들끼리 서로 비방, 비난하는 모습에 많은 국민들이 실망했고 각 후보들이 입은 상처 역시 적지 않았다. 진정 정치에는 신의도 체면도 그리고 소속 당의 미래도 안중에 없는 듯 보였다. 다행히 후보가 결정된 순간 패배한 후보가 깨끗이 승복하고 당을 위해 헌신함은 물론 “그동안의 아픔도 잊겠다”는 기품 있는 태도를 보여 국민들은 오랜 만에 ‘정치 드라마’의 감동적인 한 장면을 맛볼 수 있었다. 이제 본선 레이스가 남았다. 경선 때보다 본선 레이스에서는 한층 더 과격한 ‘네거티브 전략’이 판칠 것이다. 누군가 ‘네거티브의 달콤한 유혹’이라는 말을 했지만 네거티브가 먹히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사람 고르기보다는 나쁜 사람 고르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네거티브 공방을 둘러싸고 앞으로 두세 달은 후보들끼리 서로 ‘이전투구’를 벌일 듯해 미리 걱정이 앞선다. 과연 정치가 무엇이길래 이런 모습을 불사하는 것일까. 괜찮은 사람들도 정치권에만 가면 ‘왜 저렇게 사람이 변할까’라는 말을 주변에서 흔히 듣게 된다. 이는 우리 정치 풍토와 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비록 국민과 국가에 봉사한다는 신념으로 입문을 하지만 사실 정치란 권력 장악이 일차적인 목표다.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쏟아붓는 의지와 그들이 가진 강한 충동이나 욕망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너무 강해서 나쁜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양심이 약한 것이 문제다’라는 영국의 문필가이자 철학가이기도 했던 존 스튜어트 밀의 말도 있다. ‘강한 권력적 충동’과 ‘약한 양심’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밀은 문필가면서 정치권에 들어가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깨끗한 정치인으로 후세에 남은 몇 안되는 사람이다. 1865년경 그는 웨스트민스터의 하원 의원으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자 의회에서 거수기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것, 금권 선거에 대한 철저한 배격, 자원봉사자들에 의한 선거운동 등의 소신을 고집했고 의회에 들어가서도 이를 끝까지 지켰다. 정치인으로서 밀의 모습은 요즘 우리 정치판의 반면 거울이다. 권력의 속성상 권력 쟁취를 위한 사활을 건 투쟁은 피할 길이 없고 정치의 궁극적 목표가 승리라면 거기에는 항상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의 기본적인 문제는 그 패자가 다시 승리할 때까지는 영원히 패자로 남아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패배는 곧 생존과 직결되고 생존의 위기감은 ‘끝까지 투쟁’이라는 정치 행태에 뚜렷한 명분을 제공한다. 이 ‘한풀이’ 정치가 지속되는 한 우리나라 정치 역사는 결코 진화하지 못하고 끝내 쳇바퀴 돌 듯 부정의 역사를 반복하고 말 것이다. 사활을 건 투쟁의 또 다른 이면에는 전임자를 부정하는 우리 정치 풍토가 한몫을 한다. 어떤 우스갯소리가 있다. 회사 사장이 부임하니 전임 사장이 “회사가 어려울 때 펴보라”고 봉투 세 개를 준다. 회사가 어려워져 첫 번째 봉투를 열었더니 ‘전임 사장을 욕하라’고 적혀 있었다. 그랬더니 몇 달간은 안정이 됐다. 그러나 다시 회사가 어려워졌고 두 번째 봉투를 열었다. ‘몇 몇 간부를 책임지워 내보내라’ 과연 그대로 했더니 또 일년은 별 불평 없이 지내게 됐지만 금세 비난이 사장에게 되돌아왔다. 그래서 세 번째 봉투를 열었더니 ‘봉투 세 개를 준비하라’고 써 있었다. 정도경영보다는 비난에 지나치게 신경 쓴 실패한 사장의 얘기임은 물론이다. 정치가 지나치게 인기에 영합하다 보면 책임질 ‘희생양’을 찾게 마련이고 그 희생양에 항상 전임자와 야당이 포함되는 것이 작금 우리의 현실이다. 패자에 대한 아량,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뚝심,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는 자신감, 이런 것들이 이번 대선의 승자에게 부탁하고 싶은 덕목이다. 이런 덕목을 가진 승자는 아마도 ‘신조차 자리할 수 없는’ 냉혹한 정치 풍토와 일반 국민들의 정치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영원히 존경받는 정치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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