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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수천 년이 지난 먼 훗날의 고고학자들이 오늘날을 연구한다면, 아마도 육중한 콘크리트 속에서 자동차 엔진이 발굴돼 이 시대의 기계산업을 증명하리라. '수묵 자동차 그림'으로 유명한 한국화가 장재록(34)이 이 같은 생각으로 자신의 첫 설치작품 '하트(Heart)'를 제작했다. 자동차의 엔진에 사람의 심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동차가 현대 산업사회를 대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벤츠와 닛산의 진품 엔진을 사용해 만든 이들 작품은 오는 29일까지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리는 장재록의 개인전에 선보인다.
전통적인 수묵화 기법을 이용해 고급 자동차가 등장하는 현대 도시를 그린 장재록의 작품은 미술애호가뿐 아니라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도 친숙하다. 지난 2010년에는 그가 그린 폭스바겐 4도어 쿠페CC의 이미지가 장인정신을 강조한 폭스바겐코리아의 브랜드광고에 사용되기도 했다.
젊은 작가가 선택한 전통의 수묵기법, 동양화로 그린 서구 현대도시의 풍경과 자동차라는소재 특이성으로 그의 작품은 의외의 매력을 갖는다. 굳이 먹으로 자동차를 그리는 이유를 묻자 작가는 "자동차가 좋아서 그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동차는 남성적 욕망 속도감의 상징이자 현대 산업사회의 산물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명품자동차의 클래식 모델들이 작품의 주인공이지만 등장배경은 뉴욕 맨하탄에서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으로 확장됐다. 흑백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치밀한 묘사력과 함께 도시의 철골구조도 더 강조됐다. 작가는 백양목 같은 면 천에 짙은 먹부터 묽은 연묵까지 7단계의 농담을 사용하는데, 그 결과물은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 같은 효과를 함께 보여준다.
갤러리 입구 윈도우에서는 전시기간 동안 작가의 벽화작업이 함께 진행된다. 숲 속에 잠든 재규어를 그린 이 작품은 산업화의 정점을 지나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작가의 향후 작품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02)7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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