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이순신 장군 탄생 469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달 28일이 탄생일이었는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맞춰 탄신 행사들이 간소하게 치러졌다.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천만 번 말해도 부족하다. 장군의 무한한 애국애족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 진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에 관해 이야기할 때 충무(忠武)란 공신 호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역사에서 충무라는 공신 호를 받은 이가 이순신 장군을 포함해 열두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이순신 등 고려 이후 12명 시호받아
공신은 왕조 시대에 국가나 왕실을 위해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임금이 내린 시호(諡號)다. 이는 결국 국왕에 대한 신하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제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왕조 시대의 공신 호를 아직도 쓰는 것은 사실 사리에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공신제도는 고려 초부터 시작됐다. 조선 시대에는 개국공신을 비롯해 28종류의 공신이 있었다. 이 가운데 충무는 국가에 공이 큰 무신(武臣)들에게 국왕이 내려준 시호다. 그 대표적 장수가 이순신이다. 다시 말해 충무공은 이순신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충무공하면 곧 이순신을 떠올리게 된 데는 역사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도 있다. 역사학자나 교사들이 '충무'란 공신 호를 받은 사람이 이순신 장군뿐만 아니라 여러 명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충무공 시호를 받은 사람은 고려 시대에 세 사람, 조선 시대에 아홉 사람이었다.
가장 먼저 충무공 시호를 받은 사람은 고려의 개국공신이며 강릉 최씨 시조인 최필달(崔必達)이다. 그 다음은 평장사를 지낸 박병묵(朴炳默)이고 또 한 사람은 공민왕 때의 명장 지용수(池龍壽) 장군이다.
조선조로 들어서 가장 먼저 충무공 시호를 받은 사람은 조영무(趙英茂)다. 그는 태종 이방원의 심복으로 고려 말 개성 선죽교에서 충신 정몽주(鄭夢周)를 암살한 인물인데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공신에 봉해졌다.
두 번째 충무공 호를 받은 사람은 이준(李浚)이다. 그는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둘째 아들로서 세조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예종 초에는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웠다고 해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세 번째 충무공은 '소년 장수'로 유명한 남이 장군이다. 남이는 세조 때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이준과 함께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적개공신 1등에 올랐다. 여진 정벌에도 큰 공을 세웠으며 불과 27세에 병조판서가 됐다가 유자광(柳子光)의 참소로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남이와 그의 옥사를 다스린 이준의 시호가 같은 충무공이었으니 공교롭다.
네 번째 충무공이 이순신 장군이니 긴말하지 않겠다. 다섯 번째 충무공은 이순신과 같이 임진왜란 때 순국한 김시민(金時敏)이다. 그는 진주목사로서 임진년(1592년) 10월5일 겨우 3,800명의 민군을 거느리고 7일간의 격전 끝에 2만여 왜군을 물리쳤다. 이것이 한산대첩·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대명사로 쓰지 말고 이름 붙여야
여섯 번째 충무공 이수일(李守一)은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웠고 1602년 병마사로 여진족을 소탕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부원수로 출정해 반군을 대파했다. 뒷날 형조판서를 지냈다. 일곱 번째 충무공 정충신(鄭忠信)도 임진왜란 때 어린 나이로 공을 세웠고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 공을 세웠다.
여덟 번째 충무공 구인후(具仁후)는 인조의 외사촌 형이다. 인조반정에 참여했고 나중에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으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공을 세웠다. 아홉 번째 충무공 김응하(金應河)는 광해군 때 총사령관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후금정벌에 나섰다가 아깝게 전사한 장군이다.
참고로 중국인들이 존경하는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 제갈량(諸葛亮)과 송나라의 명장 악비(岳飛)의 시호도 충무공이다.
이처럼 충무공은 이순신 장군을 포함해 여러 명 있기 때문에 충무공을 이순신을 일컫는 대명사처럼 써서는 안 된다. 충무공이라는 공신 호를 사용할 때에는 '충무공 이순신'이나 '충무공 김시민'처럼 반드시 그 뒤에 본명을 붙여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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