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조선 건국 초기의 권력 투쟁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두 번 모두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면서 나중에 태종이 되는 이방원이 주도했는데 1차 왕자의 난은 조선 개국 후 불과 6년 후인 1398년 일어난다. 방원이 한참 어린 이복동생 방석의 세자 책봉과 이를 지지하는 정도전의 '사병 혁파' 정책에 반발해 일으킨 친위 쿠데타다. 반대편에 섰던 정도전과 남은·심효생 등 개국공신들이 처단됐고 세자 방석과 그의 형 방번까지 죽임을 당했다.
이방원은 이로부터 2년 후인 정종 2년(1400년) 동복의 바로 위 형 방간과 박포 등의 세력을 숙청하는데 이것이 2차 왕자의 난이다. 두 번의 난을 거치면서 병권 집중과 중앙집권체제를 이룩한 태종은 제도와 정책개혁을 통해 이후 500년 이상 존속하는 조선의 통치구조 전반을 완성한다. 태종은 의정부를 설립하고 승정원을 둬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게 하는 등 요즘 말로 시스템 개혁을 한다.
태종 이방원은 자주 당 태종 이세민과 비교된다. 이세민 역시 중앙집권체제 강화를 통해 중국 역사상 드문 평화시대인 정관지치(貞觀之治)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지만 '현무문의 변' 등으로 형과 동생을 모두 죽인 골육상쟁의 부정적인 면마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왕조 시대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이 같은 형제의 난이 주로 기업 상속 과정에서 경영권 다툼으로 재현된다.
웬만한 영화보다 드라마틱하게 진행된 롯데 가(家)의 분쟁을 두고 언론들은 현대판 '왕자의 난' '장남의 난'이라고 부른다.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신동빈 동복형제에다 이복 누이까지 포함하는 등 주연들이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롯데 사태도 '돈'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명제가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나눌 것도 다툴 것도 없는 일반인들은 롯데 판 '왕자의 난'을 보면서 안타까워해야 할까 부러워해야 할까.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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