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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도는 권력·야망 위한 도구였다

■지구 끝까지 - 세상을 바꾼 100장의 지도

제러미 하우드 지음, 푸른길 펴냄


프랑스 정치가이자 미식가인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예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또 누군가는 그 사람의 친구를 통해, 그가 읽는 책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했다. 평생 지도와 역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각 시대의 대표적인 지도 100장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한다.

측량 기술이 일정 수준에 오를 때까지 세계지도는 당대 사람들의 믿음과 환상을 반영했다. 기원전 600년경 바빌론의 지도에는 중앙에 그들의 나라가 있고, 8개의 다리를 통해 천상의 바다로 연결된다. 14세기 벽화에 남은 엡스토르프 지도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예수의 몸 위에 종교적 사건들이 도드라지게 표현됐다.

물론 신대륙의 발견, 새로운 항로, 식민지에 대한 기대감도 표출됐다. 실제보다 크게 그려지고 상상 속의 삽화가 더해진 지도는 사람들의 모험심을 부추기고 자부심을 강화했다. 16세기 포르투갈의 칸티노 세계지도는 아메리카 내 자국 영토를 그렸다. 18세기 최초로 세계일주 항해에 성공한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은 뉴질랜드 지역을 지도로 남겨 유럽인의 식민지 확장을 앞당긴다.



지도는 국가나 권력층의 정치적인 과시, 선전 도구로도 자주 사용됐다. 지도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훌륭한 장식품 혹은 선물로 사용된 즈음, 때로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조작되기도 했다. 16세기 바티칸 성벽 위에 걸렸던 지도에는 때 이른 통일 이탈리아가 담기며 교황의 권위와 야망을 드러냈다. 비슷한 시기 네덜란드 지도에는 중무장한 군인이 허영·죄악·악마 등 프로테스탄트의 금기에 맞서는 삽화가 포함돼, 스페인과의 독립 투쟁 중인 자국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아프리카 카메룬의 은조야 왕국 지도는 동심원 모양의 지형 한가운데 왕실을 그려 넣어 국가의 안정성을 강조했다.

이렇듯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권력이나 환상, 정치 선전 등에 활용됐던 지도는 세상을 바꿔나갔고 그 속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인쇄와 측량 기술의 발전은 지도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영향력을 높였다. 그리고 컴퓨터와 인터넷, 인공위성으로 가능해진 GPS(범지구측위시스템)와 GIS(지리정보시스템)는 스마트폰 속에 세상을 담아줬다. 이 책의 10년, 30년 후 후속편에 추가될 지도가 보여줄, 바꿔놓은 세상은 어떤 것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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