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맞았던 5월 '성년(成年)의 날'. 친구들끼리 나름의 성인식을 치르자며 수업도 빼먹고 잔디밭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양주를 한번 마셔보자며 호기롭게 캡틴큐를 외쳤다. 다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캡틴큐 한 병씩을 들이부었던 우리는 다음 날까지 지독한 숙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바다만 건너온 술이라면 무조건 양주로 불리던 당시에는 캡틴큐야말로 가난한 청춘들이 특별한 날에야 작정하고 마실 수 있는 귀한 술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40~50대들은 시험이 끝나거나 수학여행이라도 떠나야 양주랍시고 캡틴큐를 나눠 마셨던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캡틴큐는 1980년 초 첫선을 보인 35도짜리 양주로 국산 주정에 위스키 원액을 20% 미만으로 섞은 기타재제주(其他再製酒)였다. 당시만 해도 일반인이 진짜 양주를 접하기 어려웠던데다 높은 주세를 회피하기 위해 이런 정체불명의 술이 탄생한 것이다. 캡틴큐 700㎖짜리가 그때 돈으로 3,000원에 불과했으니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만족도는 높아 시쳇말로 '가성비'가 아주 뛰어난 술이었다. 출시 첫해에만 1,000만병이 팔릴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서민 양주'라는 애칭이 따라붙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광고도 '사나이의 세계를 화끈하게 이어준다'고 했으니 상남자의 필수품으로 대접받을 정도였다.
지난 35년간 200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는 캡틴큐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고 한다. 물과 에탄올 등을 탔을 때 고급 위스키와 비슷하다고 알려져 해마다 수만 병씩 가짜 양주를 제조하는 데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한 해 17만병씩 팔리는 데는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제조업체 입장에서도 별로 수익이 나지 않으면서 오히려 회사 이미지만 자꾸 나빠지니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우리네 청춘과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캡틴큐의 불명예스러운 퇴장이 아쉽게만 느껴질 뿐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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