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마지막 회를 내보낸 KBS 드라마스페셜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방송시간이 일요일 자정인데다 4부작의 짧은 기획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시청률이 8%에 육박하는 괴력을 보였다. 그간 여러 드라마에서 비쳐진 어떤 설정보다도 더 극적으로 강남 사교육 현장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14일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만난 이원익(57ㆍ사진) PD는 "우리나라의 극단적인 사교육 현실을 고발한다기 보다는, 네 명의 강남 엄마에 대한 인물 탐구라는 느낌으로 접근했다. 저마다 강한 개성을 가진 네 엄마가 가진 생각이 자식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끝까지 가봤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는 네 명의 엄마가 한 회씩 주인공으로 나서, 비슷한 시점의 사건을 각자의 시선과 사건으로 풀어나갔다. 1부는 주연인 송선미가 대기업의 유능한 마케팅 팀장에서 전업주부가 되는 정수아 역을, 2부는 김세아가 소위 강남 '텐프로' 룸살롱 출신에서 일약 청담동 사모님이 된 차혜주 역을 맡았다. 3부는 신동미가 명문대 교수 남편에 영재원 출신의 아들을 둔 유경화 역, 마지막 4부는 변정수가 돈으로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골수 강남부잣집 엄마 이미복 역으로 등장했다.
강남의 '상위 1%'급 유치원에서 원생 엄마로 마주친 네 엄마들은 정수아를 제외하면, 모두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하나씩 가졌다. 부족한 재력, '텐프로'의 과거, 남편의 외도. 양파 껍질처럼 하나 둘 드러나는 치부를 공격하고, 일단 돌아서면 매몰차고 잔인하게 끊어낸다. 이러한 이야기 전개가 지나친 듯 하면서도 현실감을 놓치지 않았다.
이 PD는 "대본을 쓴 김현정 작가가 서초동에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며 겪은 일에 살을 붙인 이야기다. 김 작가도 10여년 직장을 다니다 퇴사했던 시기로, 극중 정수아 역과 맞물리는 부분이 있어 더욱 실감나는 작품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교육 현실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드라마와는 좀 달랐다.
"우리 때만 해도 시험 쳐서 중학교 들어갔다. 당시 최고 명문이던 경기중학교로의 진학률이 바로 그 초등학교의 수준이었다. 있는 집에서는 4학년이면 과외를 시켰다. 지금보다 더한 측면도 많았다. 그렇다고 나쁜 면만 있었을까. 1960~1980년대 우리나라의 발전을 끌어내는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다. 드라마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지만, 처음 1~2회는 카메라가 주인공과는 거리 둔 관찰자의 시선으로 움직인다. 다 내려놓고 일반인이 강남을 보는 시각을 따라간 거다."
이 PD는 배우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송선미는 대본을 받고 가장 먼저 찾아왔다. 이미 캐릭터에 대한 파악은 물론 설정까지 끝내고 와서, 외려 드라마 엔딩에 대한 조언까지 하더라. 김세아는 아이를 낳으면서 연기의 진폭이 더 넓어졌다. 특히 유치원 교실에서 오줌을 지린 아이에 옷을 갈아 입히는 화장실 장면은 정말 리얼했다. 일반인들에게 인지도는 낮지만 3부 주인공 신동미는 단막극만 200여편 출연한 베테랑 연기자다.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변정수는 평소의 호방하고 힘 있는 스타일이 캐릭터에서도 잘 묻어나 좋은 연기가 나왔다."
사실감 넘치는 대본, 좋은 캐스팅… 4회라는 시간이 짧아 보였다. "안 그래도 시청률 8%를 기록하며 아쉽다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4부에서는 결말 장면이 길어지며 아까운 장면들이 많이 잘려 나갔다. 아쉽지만 조만간 김 작가의 새로운 기획이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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