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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욕조 속에서 책을 펼치면
입력2006-11-21 16:05:02
수정
2006.11.21 16:05:02
내 경우 한가한 시간은 별로 없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여유 시간은 분명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가한 시간, 여유 시간에 대해 ‘준비된 인간’이다.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놀 아이템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책 읽기다. 보통 때 ‘필요해서 읽는 책’과 달리 쉴 때 읽는 책들을 항상 구비해둔다. 달콤한 휴식을 위한 책들은 어떤 책인가. 과학책, 소설, 여행서, 자서전, 영어 공부책과 잡지다. 이런 책 읽기는 내게 최고의 오락이다. 과학서적을 유달리 좋아하는데 내게는 공기 맑은 시골에 갔을 때 밤하늘에 있는 별 보기처럼 경이로운 기쁨을 준다.
그리고 소설. 나는 건질 것이 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남부의 여왕’의 테레사 같은 강한 의지의 여성이나 ‘항해 일지’의 탕헤르 소토 같은 여성을 쓴 작가 아르투르 페레스 레베르테를 만나볼 수 없을까 하는 꿈을 꾼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을 했다’를 읽고는 콧대 높은 우리 방의 독신 남성들에게 “이런 무서운 여자에게 걸리기 전에 웬만하면 결혼하라”면서 한번 읽어볼 것을 ‘강추’하기도 한다. 영어 소설이나 에세이 읽기, 언젠가 가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서 심심할 때 보기 위해 예정에 없는 여행서를 사놓고는 흐뭇해 하기도 한다.
그 다음은 목욕이다. 나는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원래 좋아한다. 그리 감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쓴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주인공 아오이는 몇 시간이고 욕조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나온다. 나의 친구 왈, “퉁퉁 불어도 괜찮나, 얘는?” “마른 오징어처럼 안 불어?” 하면 경험적 사실을 대신 답해줄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던 적도 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종류의 바디용품이나 목욕용품이 나온다. 그 전에는 외국 여행할 때 꼭 사는 필수 쇼핑 목록이 주로 이런 목욕에 관련된 물건들이었다. 목욕할 때 듣는 명상음악을 담은 CD, 목욕용 독서대, 목욕용 베개를 발견할 때마다 기쁨에 넘쳐 ‘바로 이거야! 내가 찾던 것이…’ 하며 무조건 사고 말았다. 물론 바디로션이나 아로마오일, 거품목욕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이런저런 소소한 제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저렴한 사치’를 맛보고는 했다. 요즘은 너무 바빠 샤워로 끝낼 수밖에 없어 정말이지 안타깝다. 그래도 한두 시간쯤 한가로운 시간이 날 때는 목욕을 즐긴다.
한 프랑스 철학자가 그랬다고 한다. 미셸 투르니에인가? 진보주의자는 샤워를 즐기고 보수주의자는 목욕을 즐긴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확실한 보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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