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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8·31 대책] <2> 정책의 함정들

너무 먼 공급확대… 또다른 투기판 우려<br>89년 분당등 신도시 6개월만에 분양 속전속결<br>송파등은 3년후로 미뤄…'투기와 전쟁' 불가피<br>개발재원 마련·지자체와 갈등 등 곳곳 지뢰밭

지난 88년 올림픽이 끝난 후 아파트 값이 뜀박질을 하더니 6개월 만에 두 배 가까이 오른 지역이 속출했다. ‘중산층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나돌 지경이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이 꺼낸 비장의 카드는 분당ㆍ일산 등 신도시 건설. 신도시 프로젝트는 발표(89년 4월 초)에서 아파트 분양(89년 12월26일)까지 불과 6개월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초특급 프로젝트였다. 정부가 이처럼 번개치듯 서둘렀던 것은 왜일까. 신도시 등 주택공급 확대정책에는 땅값 급등을 비롯한 갖가지 부작용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사전 준비도 필요하지만 ‘속전속결원칙’은 더욱 필수적이다. 참여정부가 두 달이 넘는 작업을 거쳐 내놓은 ‘8ㆍ31 대책’. 정부는 ‘공급확대’를 이번 대책의 백미(白眉)로 꼽고 있다. 하지만 16년 전의 상황과 이번에 나온 주택공급 확대정책을 오버랩시켜봤을 때 8ㆍ31 대책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동화 속의 대책’이라 할 수 있다. 공급대책에서 사전의 치밀함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림만 가득하다. 송파 거여 일대의 부동산 값이 발표와 동시에 들썩거리면서 ‘제2의 판교’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인 셈이다. ◇너무나 먼 공급확대=정부는 거여 신도시의 분양시기를 오는 2008년께로 잡았다. 앞으로 3년간은 주변 지역의 집ㆍ땅 값이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정부는 이 기간 내내 또 다른 ‘투기와의 전쟁’을 펼쳐야 한다. 강북권 광역개발도 마찬가지. 이 또한 개발의 그림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문제는 강북 개발방안도 청사진 이상으로 구체화된 것은 없다는 점이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공급확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현실로 가시화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광역개발의 모습이 드러나고 마무리될 때까지 강북권 집값이 안정되기를 기대한다면 소도 웃을 일”이라고 비꼬았다. 공급정책을 사전에 준비, 발표한 것이 아니라 운을 떼놓고 그런 다음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리겠다는 것은 “정부가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개발계획=행정도시 이전지인 충남 연기ㆍ공주군. 정부는 행정도시 개발계획을 내놓은 이후 땅값을 잡겠다고 강력한 투기억제대책을 연이어 꺼내 들었다. 하지만 가격은 정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요지부동이다. 부동자금이 400조원을 웃돌고 있는 상황에서 개발호재지역에 돈이 몰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전문가들은 토지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선결조건은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개발계획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주택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주택시장 내부요인 외에) 외적 요인에 대한 고려가 8ㆍ31 대책에서 제외돼 있는 게 문제점”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에서 돈이 자연스럽게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물꼬를 우선적으로 터줬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서 자금시장 부문은 고스란히 빠졌다. 적립식 펀드 등에 대한 세제혜택 등의 조치를 ‘없었던 일’로 돌려놓은 셈이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부동산을 통해 나오는 수익률을 절반 수준으로 낮출 것”이라고 했지만 6개월에 50%의 수익률을 올린 투자자들은 단 10%만 돼도 ‘부동산’이라는 매력덩어리를 벗어 던지기 힘들다. ◇기반시설부담금, 재원마련도 논란거리=개발이익 환수 차원에서 도입하기로 한 기반시설부담금제도도 8ㆍ31 대책이 남긴 함정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 후의 가장 큰 부작용은 분양가 인상이다. 건설업체들은 기반시설부담금으로 악화된 사업수익성을 분양가 인상으로 확보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기반시설부담금은 도입시점을 서두르기보다 어떤 방식으로 도입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지 충분한 사전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정책이 안고 있는 모순은 ‘재원’이다. 강북 광역개발계획을 보면 당장에 현실성을 의심하게 된다. 최소 15만평 이상으로 진행될 강북 광역개발의 경우 구역당 최소 1조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된다. 은평 뉴타운에만 3조7,000억원이 소요됐다. 정부 계획대로 총 24곳에 이르는 뉴타운만 개발해도 예산은 천문학적이다. 한 경제부총리는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공급 쪽의) 재원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며 “중앙정부의 예산을 투입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종합투자계획을 실행하면서 쓰고 있는 ‘건설후임대(BTL)’ 방식을 원용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소박한 기대다. BTL 방식에 들어오는 돈은 도입 반년이 넘도록 정부의 기대치를 한참 밑돌고 있다. ◇끊이지 않는 지자체와의 갈등=강북 광역개발을 놓고 서울시와 정부의 주도권 싸움이 한창이다. 공영개발을 확대하려는 정부와 민간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시의 안이 충돌되고 있는 것이다. 양자간의 갈등은 광역개발의 그림이 그려질수록 첨예하게 대립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방세법을 개정, 취득ㆍ등록세를 내려주겠다는 정부의 계획도 지자체와의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힘든 여정 끝에 모습을 드러낸 8ㆍ31 대책은 이처럼 곳곳에 깔린 지뢰밭을 앞에 두고 출발선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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