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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노동시장도 경제민주화 적용… 정규직 중심 노조 바꿔야<br>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되면 권위주의화 불가피<br>야권 결국 조직력 갖춘 문재인으로 단일화 예상<br>박근혜 가장 준비 잘돼… 역사관도 곧 정리할 것



오랫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 물을 정도로 일흔두 살의 노(老)정객은 심기가 편치 않았고 고민도 많은 듯했다. 지난주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출마 선언과 동시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앞질렀다. 대선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노정객은 직감한다. 그는 한때 안 후보에게 경제정책에 대해 조언했지만 지금은 박 후보가 대통령 감으로 최선의 인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 프로젝트'를 선두에서 지휘하고 있는 김종인(72)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이야기다. 지난해 수렁에 빠진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을 맡아 올 4ㆍ11 총선에서 과반수가 넘는 152석을 얻었고 지금은 새누리당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안 후보와 불꽃 튀는 정책대결을 벌이고 있다. 김 위원장을 만나 올해 대선의 화두이자 시대정신이 된 '경제민주화'와 새누리당의 정책 방향, 3자 구도로 형성된 대선 정국 등에 대해 들어봤다.

경제민주화, 재벌 소유구조 건드리는 것 아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987년 헌법 개정 논의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119조2항에 경제민주화를 넣자고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재계와 관료집단은 물론 전 전 대통령의 반대에 직면했지만 결국 관철시켰다.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통하는 이유다. 그는 25년 만에 다시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른 것이 내심 반가운 기색이었다. 그는 경제민주화의 선례를 1939년 미국 대공황과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찾았다. 이 시기 정부가 시장을 믿고 규제를 풀어주면서 경제주체가 과잉ㆍ중복투자를 했고 결국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축구경기에서 심판이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내밀 듯이 경제운용도 질서가 없으면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는 시장이 효율을 잃어버렸을 때 운영질서를 조금씩 바꿔 효율을 지속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경제민주화 논의에 대해 재계는 정치권이 재벌ㆍ대기업의 소유구조를 변화시키려 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소유구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면서 "그것은 시장의 기본원리에 모순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순환출자 제한, 출자총액 제한, 금산분리 등에 대해 "경제를 보다 조화롭게 운용하는 틀을 짜기 위해 필요한 도구는 될 수 있지만 도입을 전제하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경제민주화에는 노동시장이 들어가야 한다"면서 "정규직이 기업의 소유주와 의견이 일치하면 비정규직을 누르는 구조를 놔두고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노조에 대해서도 가입률이 낮고 정규직 중심인 점을 꼬집으며 "노조가 아직도 소속된 사람만 대변하는 비민주적인 구조"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인물처럼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는 구체적인 방안을 밝힌 적이 없다. 정치권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비판을 방어하는 정도다.

그는 "모든 정책은, 특히 경제정책은 다른 부분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해 만들어야 한다. 단편적으로 가면 결국 부작용과 파행을 초래할 수 있다"고 언급, 경제민주화 실천 방안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인터뷰 중간에 인상적인 발언을 했다. "경제질서를 새롭게 만든다는 사람이 그렇게 무모하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그렇게 무책임하지 않아요."

안철수, 대통령 되면 권위주의로 변할 것

주제를 바꿔 현실정치로 방향을 틀었다. 김 위원장은 안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의 예상과 달리 출마를 결심한 안 후보의 속내를 그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김 위원장은 "안 후보는 지난 1년 동안 국민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왔고 이제는 (출마를 기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혼자 몸이 아닌 만큼 선택의 여지없이 출마를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안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낮게 봤다.

"우리나라 유권자가 감정이나 출신지역에 따라 선택하는 것 같지만 종국에는 '누가 진실되게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되는가'라는 기준으로 투표합니다. 나는 안 후보의 실력이 그렇게 파괴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김 위원장은 과거 안 후보에게 '대통령이 되려면 서울시장이 아니라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게 정도(正道)'라고 조언했지만 안 후보는 '국회의원은 하는 일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그 일을 기억하며 안 후보가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안 후보는 대선 출마 선언에서 국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무소속 대통령이 국회를 원만하게 끌고 갈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을 뒷받침할 정당이 없는 국회는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결국 대통령은 권한을 앞세워 권위주의적으로 일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현실에서 그게 용이하겠습니까. 안 후보가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 위원장은 안 후보가 결국 문 후보와 단일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안 후보가 대선 출정식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정치를 평생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 후보는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안 되는 것을 끝까지 고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 후보는 국민의 의사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다면 단일화도 여론조사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데 안 후보가 조직이 있는 문 후보를 이기기 쉽지 않아요. 사실 안 후보 입장에서는 단일화 과정에서 국민으로부터 심판 받아 탈락하면 정치에서 빠져나갈 출구가 생기는 것이죠."

김 위원장은 안 후보의 경제민주화 내용에 대해서도 평가절하했다.

"안 후보는 지난 1년 동안 경제민주화를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려다 보니 여야가 내세운 경제민주화 얘기를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죠. 차별성을 강조하려다 보니 여야의 경제민주화를 혼합해 성장동력을 붙이는 방식으로 선순환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와 성장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경제민주화를 바탕으로 성장동력도 만들고 복지도 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세 후보 중 준비가 가장 잘된 사람

김 위원장은 박 후보도 베스트는 아니라고 했다. 2007년 대선 경선에 출마한 박 후보를 가리켜 "정치에 입문한 지 10년도 안 된데다 경제를 앞세운 이명박 대통령에 비해 내세울 것도 없었다"면서 "이미지도 박 후보는 이 대통령에 비해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박 후보가 '준비가 제일 잘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박 후보가 그래도 지난 5년 동안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자기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우리나라가 당면한 정치ㆍ경제ㆍ사회에 대해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고 준비한 사람입니다. 지난해 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을 때에 비해 올 4월 총선을 겪고 나서 더 달라졌어요. 전국의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현실이 뭐라는 것을 더 알게 됐습니다. 만약에 박 후보가 비대위원장 시절 그대로였다면 나도 대선에서 그를 돕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의 변화와 진정성에 높은 점수를 매겼지만 역사관에 대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 후보는 부모님을 나라하고 바꾼 사람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라를 잘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박 후보가 많은 것을 내려놓았는데 박정희 정권 당시의 평가에 대해서도 못 내려놓을 게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박 후보에게도 이처럼 직언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약간의 떨림도 느껴진다. 박 후보가 역사관 논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물었다.

그는 "국민이 박 후보의 역사인식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이번 기회에 많이 느꼈을 것"이라면서 "지금까지는 '역사의 평가에 맡긴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그 말은 딱 끊어서 다시는 역사관에 대해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할 것으로 본다"고 기대 섞인 전망을 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되고 있는 측근 비리에 대해 김 위원장은 박 후보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사덕 전 의원은 경선 캠프에서 공동 선대위원장을 했기 때문에 박 후보의 최측근입니다. 나름대로 처리하고 가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박 후보가 그 점에서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측근이라고 해도 의심 가는 징후가 잡힌다면 본인이 가차없이 털고 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화의 주제를 살짝 바꿔 대선 공약에 대해 질문했다. 김 위원장이 이끄는 국민행복추진위는 박 후보의 대선 공약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초기작업을 하고 있다. 현실 가능성이 없거나 미래에 실행이 불가능한 공약은 만들지 않을 것"이라면서 "새누리당 공약은 믿을 수 있다는 시그널을 국민들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민주당, 일자리창출 책임 있는 얘기해야

김 위원장은 문 후보를 가장 유력한 야권주자로 봤다. 그는 문 후보가 박 후보와 차별화 지점으로 삼은 '일자리 창출'에 대해 평가절하했다.

"민주통합당은 원래 경제민주화를 정강정책에서 우선순위에 놓았다가 일자리 창출로 바꿨습니다.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과 경쟁해서 별로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경제민주화가 먼저냐, 일자리 창출이 먼저냐고 물으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일자리 창출을 꼽습니다. 민주통합당이 순위를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일자리 창출에 대해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의 숫자를 늘리지 않는 이상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면서 "민주통합당도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책임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자리 창출 방안도 내놓았다.

"역대 대통령 중에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 안 한 사람이 없습니다. 노무현ㆍ이명박 정부에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기업에 감세해주고 규제를 풀어줬어요. 그래서 일자리가 늘어났습니까. 경제를 운용해보면 각 부분에 아직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소지가 많습니다. 정부는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그런 것을 개발해야 합니다."






"바닥민심 너무 몰라… 당원들 뼈깎는 자기반성을" 쓴소리

임세원기자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얼마 전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 나가 "선거에 너무 쉽게 당선돼 바닥민심을 모른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지금 새누리당에는 공천장만 받아 당선된 의원이 많다"면서 "대선에서 적당히 후보 사진 걸어놓고 표 달라면 준다는 사고방식으로는 절대로 국민을 이끌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 자리에 있던 40여명의 의원들은 그의 질타에 별다른 변명을 하지 못했다. 큰 어른의 준엄한 꾸짖음이었고 잘못을 깨우치는 죽비와도 같은 울림이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의원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역사인식, 당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거나 직언을 하는 의원들이 드문 현실에서 김 위원장이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며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면서 "당원들이 4ㆍ11 총선 승리에 도취돼 지난해 말 비상대책 상황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8월 기준 새누리당 의원은 모두 149명으로 지역구 124명, 비례대표 25명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 의원 중 90명가량은 비례대표 성격이 짙다고 본다. 서울 강남 지역, 대구ㆍ경북(PK) 등 치열한 경쟁을 거치지 않고 출마만 하면 당선되는 지역은 비례대표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직접 발로 뛰면서 다른 당 후보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바닥민심을 확인할 수 있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면서 "새누리당이 변해야 하는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내가 새누리당에 기분 나쁜 소리만 하게 됐다"면서 "책임윤리를 강조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치권 전체를 겨냥해 "의원들이 눈치만 보니 한국 정치가 발전하지 못했고 그래서 아무런 정당 기반도 없는 분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안철수 현상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과 열망은 달리 말해 새누리당은 물론 기존 정치권 전체의 자기반성과 뼈를 깎는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약력

▦1940년 서울 ▦1964년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1972년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박사 ▦1973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981년 11ㆍ12대 국회의원(민정당) ▦1989년 보건사회부 장관 ▦1990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1992년 14대 국회의원(민자당) ▦2003년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2004년 17대 국회의원(민주당) ▦2008년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 ▦2011년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2011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2012년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 선대위원장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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