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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ㆍ19 개각에서 ‘모피아’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외환위기 주범으로 몰리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기간에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더니 이번에는 청와대ㆍ기획재정부ㆍ금융위원회 등 정부와 여당 경제 라인을 장악하며 전성기를 다시 열었다. 반면 지난 10년간 승승장구하던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고배를 마시고 있다. 모피아는 옛 재무부를 뜻하는 영문 약자 ‘모프(MOF)’와 ‘마피아’를 합친 말이다. 전문성과 추진력은 탁월하지만 자기들만의 인맥으로 똘똘 뭉쳐 정부 요직을 차지해온 데 대한 반감이 녹아 있다. 하지만 이번 개각에서는 구조조정 등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무부 출신 특유의 돌파력과 추진력이 요구되면서 대거 발탁됐다. 우선 윤증현 재정부 장관 내정자(행정고시 10회)가 1기 경제팀인 강만수 장관에 이어 경제팀 수장 자리를 차지했다. 윤 내정자는 옛 재무부 출신들의 ‘따거(중국말로 ‘맏형’이란 뜻)’로 통한다. 선이 굵은 보스 기질로 부하 직원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대폭 위임하는 스타일이다. 밑에서 일을 배운 재정부 관료는 신제윤 차관보, 이석준 행정예산심의관, 최종구 국제금융국장 등이 거론된다.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으로 기용된 윤진식 한국금융지주 회장(행정고시 12회)과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된 진동수 수출입은행장(17회)도 재무부 출신이다. 재정부장관-금융위원장-청와대 경제수석을 아우르는 라인업을 형성하게 된 셈이다. 권태신 국무총리실장(19회)과 허경욱 기획재정부 제1차관(22회)도 재무부 때 윤증현 내정자와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여기에 집권 여당의 정책을 총괄하는 임태희 정책위의장과 이한구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등을 포함하면 정부와 여당의 핵심 경제 라인이 모두 재무부 출신으로 채워졌다. 모피아는 김대중 정부 들어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리고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는 현대ㆍ기아차 비자금 사건으로 변양호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과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 구속되면서 시련을 겪다가 이번 개각으로 중흥기가 열린 것이다. 반면 거시경제와 기획능력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EPB 출신은 이번에 힘을 잃었다. EPB 라인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강봉균ㆍ진념ㆍ전윤철ㆍ권오규 등 경제부총리와 변양균ㆍ윤대희ㆍ김대기 등 청와대 정책실장 및 경제수석ㆍ비서관들을 배출했다. 특히 이번에 EPB 출신인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의 퇴진은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윤증현-진동수’ 라인에 힘을 실어주고 일사불란한 경제팀 운용을 위해 박 수석이 유탄을 맞았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비록 한덕수 전 총리가 주미대사로 복귀했지만 아무래도 퇴조의 기색이 역력하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획원 출신들이 지난 정부에서 약진했던 게 여당과 현 정부의 반감을 산데다 현 위기상황이 국정기획보다 전문성을 더 요구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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